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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모닝, 귀츨라프 (한국에 온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굿 모닝, 귀츨라프 (한국에 온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저자 : 오현기
출판사 : 북코리아
출판년 : 2014
ISBN : 9788963243474

책소개

한국에 온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귀츨라프와 그의 선교사역을 꼼꼼히 추적하고 있다. 특히 귀츨라프 방문 당시 조선과 서양의 사료들은 귀츨라프에 입체적으로 접근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연구를 통해 귀츨라프의 성장 배경과 교육 과정, 선교사적 생애를 전 방위로 고찰함으로써 그가 조선에서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행한 선교사역을 그려 볼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1832년에 귀츨라프가 행한 조선 선교는 우연의 산물이거나 충동적 선교, 일시적 선교가 아닌 독일 후기 경건주의, 특히 친첸도르프와 헤른후트주의의 영향을 받아 행한 필연적 선교사역이었고, 경건주의 신학에 뿌리를 둔 체계적 선교였으며, 조선을 위해 면밀히 계획되고 준비된 선교였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알라딘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그가 우리를 깨웠고, 이젠 우리가 그를 깨운다”



한국에 온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귀츨라프

1832년(순조 32) 7월 17일, 한 서양 상선이 조선에 들어왔다. 이 배의 이름은 로드 애머스트호(Lord Amherst)이며, 조선에 최초로 정식통상을 요구한 서양 선박이었다. 그런데 이 배에는 한 독일인 선교사가 타고 있었다. 그가 바로 한국에 온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칼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utzlaff, 1803~1851)였다. 애머스트호가 황해도 몽금포 해안을 거쳐 서해 고대도에 정박해 있는 동안 귀츨라프는 적극적으로 조선인들과 소통하며 복음으로 조선인들을 깨우고자 노력했다. 동시에 문화의 중개자이기도 해서 서양의 문화를 한국에 소개했을 뿐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세계에 알렸다. 이때 한국과 서양 간의 문화적 접촉이 집중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귀츨라프는 이 땅에서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머물렀지만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대표적 업적을 ‘최초로’ 이룩했다.



① 최초로 한국에 온 개신교 선교사1866년에 순교한 선교사 토마스보다 34년, 1884년에 입국한 의료선교사 알렌보다 52년, 1885년 입국한 미국 선교사인 언더우드/아펜젤러보다 53년이나 앞서 조선을 선교하기 위해 방문했다.

② 최초로 한글 주기도문 번역 시도성경에 나오는 ‘주기도문’을 한문으로 써주고 그것을 한글로 번역했다. 이는 단편적이지만 한글 성경번역의 효시라 불릴 만하다.

③ 최초로 한문성경과 한문 전도서적 전달귀츨라프는 가는 곳마다 조선인들이 읽을 수 있는 한문으로 된 성경이나 한문 전도서적을 나누어 주었으며, 순조대왕에게는 로버트 모리슨과 밀른 선교사가 번역한 한문성경인 <신천성서(神天聖書)>를 진상했다.

④ 최초로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체계적으로 소개당시 조선이 한자 문화권임에도 불구하고 조선만의 문자인 한글이 있다는 것을 안 귀츨라프는 한글을 배워 체계적이고 학술적으로 서양에 소개하여 최초로 한글을 세계에 알렸다. 그의 영문 소논문 ?한글에 대한 소견?은 영어권은 물론 독일어로 일부 번역되어 독일어권에도 소개되었으며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⑤ 최초로 서양 감자 파종먹을거리가 제대로 없어 곤궁한 조선인들을 위해 서양감자를 심고 재배하는 법을 조선인들의 눈앞에서 실제로 보여 주었고, 글로 써 남겨 주었다. 또한 야생포도로 음료를 만드는 법 역시 전수했다.

⑥ 최초로 서양 선교사로서 서양 근대의술을 베풂충청도 기착지인 고대도 도착 이후, 줄곧 환자들을 위해 약을 처방했다. 한 예로 60명의 노인 감기환자를 위한 충분한 약도 처방해주었다. 이는 조선에 온 서양 선교사가 최초의 서양의술을 베푼 기록이다.

⑦ 동북아를 위한 최초의 체계적 선교전략 구상귀츨라프는 제주도 일대를 둘러본 후, 조선/중국/만주/일본을 잇는 선교기지로 알맞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선교기지인 제주도를 통해 동북아 조선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그리스도 교회의 첫 번째 시작”을 언급하면서 동북아 선교를 위한 기본적 전략을 처음으로 구상을 했다.



새로운 고증을 통한 귀츨라프의 복권

이렇게도 중요한 역사적 기여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그의 사역에 대한 고증과 평가가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한국에 소개된 귀츨라프의 연구들은 단편적이거나 고증의 당위성에 있어서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 독일인 귀츨라프가 작성한 독문 1차 사료가 참고 되지 못했고, 1차 사료가 참고되더라도 영어문헌에 한정하거나 또는 영어나 일어로 된 2차 문헌을 참고한 것에 그치는 예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도 있는 1차 사료를 중심으로 한 깊이 있는 연구가 선행되고, 동시에 그가 품었던 동북아, 특히 조선에서 행한 선교의 실체를 파악한 다음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 당연히 지금까지 오해받거나 간과된 그의 선교사로서의 행적은 새로운 평가와 판단이 내려져야 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역사적 자료가 발굴되면 변화의 흐름에 맞게 역사를 판단하고 서술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함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는 귀츨라프가 모국어인 독일어로 기록한 문헌들과 현재 독일어권에서 진행되는 연구 상황/성과들을 한국에 소개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굿 모닝, 귀츨라프-한국에 온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북코리아, 2014)는 그간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새로운 고증을 통해 귀츨라프와 그의 선교사역을 꼼꼼히 추적하고 있다. 특히 귀츨라프 방문 당시 조선과 서양의 사료들은 귀츨라프에 입체적으로 접근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연구를 통해 귀츨라프의 성장 배경과 교육 과정, 선교사적 생애를 전 방위로 고찰함으로써 그가 조선에서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행한 선교사역을 그려 볼 수 있었다. 더 멀리 나아가 그의 선교신학의 근간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1832년에 귀츨라프가 행한 조선 선교는 우연의 산물이거나 충동적 선교, 일시적 선교가 아닌 독일 후기 경건주의, 특히 친첸도르프와 헤른후트주의의 영향을 받아 행한 필연적 선교사역이었고, 경건주의 신학에 뿌리를 둔 체계적 선교였으며, 조선을 위해 면밀히 계획되고 준비된 선교였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가 비록 한 달간의 길지 않은 일정으로 조선을 방문했으나, 이 책의 말미에 다다르면 이 땅에 거주하면서 선교했던 선교사들에 견줄 수 있는 큰 업적을 그가 이루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왜 지금 귀츨라프인가’

지금 이 시점에서 귀츨라프를 조명해야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귀츨라프에게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라는 타이틀을 돌려주고 그의 선교에 붙어 다니는 비공식이라는 수식어를 제거하여 그에게 합당한 명예를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 나아가 그가 행한 선교가 복음에 입각한 바른 선교였다면, 한국개신교선교 원년이 새롭게 논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귀츨라프는 제2의 종교개혁이라 불리는 독일 경건주의 신학으로 무장한 선교사이다. 그의 한국 방문을 통해 우리 한국의 기독교가 미국의 복음주의적 유산뿐 아니라 독일 경건주의적 신앙의 유산도 직접 물려받은 풍부한 선교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셋째, 귀츨라프의 선교사역의 가치, 즉 복음 전파와 아울러 선교대상인 현지 주민을 불쌍히 여기는 돌봄의 선교를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현대 선교사역의 확립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귀츨라프는 그 점에 있어 우리에게 올바른 선교가 무엇인지 모범을 보여준다.

넷째, 지금 우리에게는 21세기형 귀츨라프가 필요한 까닭이다.

현대의 다양한 문화적 접촉과 빠른 변동 속에서 복음 선교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법론적 대안이 필요하다. 우선 귀츨라프는 선교지의 주민을 무시하거나 서양문화를 강요하지 않았다. 타문화를 자문화와 동등하게 인정하고 교류했던 것이다. 그는 선교지 주민들과 똑같은 생활을 했고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함께 했다. 동시에 복음으로 설득하고 인내하며 소통했다. 그의 선교는 정복과 강요가 아니라, 설득과 이해 그 자체였다. 이것이 당시의 다른 선교사들과 그를 구별 짓는 특징이라고 하겠다. 바른 선교신학과 선교방식의 정립이 요구되는 이 시대야말로 문화 간 소통을 부르짖었던 귀츨라프의 열정적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라고 확신한다. 그는 분명 이 분야의 선구자였다.

다섯째, 귀츨라프가 관심을 기울이거나 관계한 분야는 신학은 물론, 역사학/문화인류학/종교학/언어학/국제통상학/의학/지리학/정치학/법학/지역학 등 실로 다양하고 방대하다. 그가 경건주의적 신학과 신앙을 바탕으로 세계의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며, 신앙적으로 적용하려는 모습은 그의 전 생애를 통해 나타난다. 이것이 그의 기독교 세계관이다. 그의 행한 모든 사역은 그를 기리는 후학들에게도 계승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귀츨라프라는 선교사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그가 행한 선교를 둘러싼 새로운 담론이 형성되길 기대한다. 그가 1832년 우리를 복음으로 깨웠듯이, 이제는 우리가 묻힌 그의 명성과 그가 남긴 역사적 교훈을 세계에 다시 일깨울 차례가 된 것이다. 이 책이 그 첫발을 내딛는 작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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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프롤로그



제1장 선교사 귀츨라프의 유소년기

1. 퓌릿츠에서의 어린 시절

2. 황제가 알아본 그의 천재성

3. 귀츨라프의 회심

4. 베를린 시절 그가 받은 영향



제2장 귀츨라프에게 나타나는 친첸도르프의 헤른후트주의의 영향

1. 헤른후트 형제단과 헤른후트주의의 태동 과정

2. 헤른후트 형제단의 베를린 정착과 교회 설립

3. 베를린 선교학교와 헤른후트주의

4. 베를린 선교학교의 설립자 예니케 목사

5. 베를린 선교학교의 교과 과정과 강조점

6. 귀츨라프의 선교신학에 나타난 헤른후트주의

7. 귀츨라프에게 헤른후트주의적 영향을 끼친 그 밖의 인물들



제3장 네덜란드 선교회에서의 선교훈련



제4장 칼 귀츨라프의 전기 선교사역

1. 바타비아/빈탄/싱가포르 선교

2. 시암 선교

3. 마카오 선교



제5장 귀츨라프의 조선 선교

1. 조선 선교 이전의 여정

2. 조선인과의 만남, 조선 선교를 위한 탐색

3. 본격적 조선 선교



제6장 귀츨라프의 조선 선교탐방경로-고대도 안항 정박론

1. 최초 정박지-몽금포 앞바다의 몽금도 앞

2. ‘장산’에서 고대도 안항까지의 항로

3. 귀츨라프의 ‘고대도 안항’ 정박에 대한 근거



제7장 귀츨라프 선교사가 탑승한 로드 애머스트호-그 역사적 고증과 선교역사적 의미

1. 1832년 이전 개신교인의 조선 방문

2. 애머스트호의 규모

3. 최초의 서양 통상선이 선교선으로



제8장 귀츨라프의 섬, 고대도

1. 하나님이 사랑한 섬, God愛島!

2. 고대도에서 보아야 할 곳



제9장 칼 귀츨라프의 후기 선교사역

1. 첫 번째 중국 내지선교회-복한회의 설립

2. 중국을 위한 베를린 여성선교회의 결성과 협력선교

3. 근대 중국 정치/사회에 미친 영향-청?영전쟁과 태평천국의 난



제10장 전문가 인터뷰

1. 실비아 브레젤 박사

2. 베른트 크렙스 박사

3. 클라우스 뢰버 박사

4. 하르무트 발라벤스 박사



제11장 귀츨라프의 아시아 언어로 된 대표적 서적-중국어, 일본어, 시암어

1. 중국어

2. 일본어

3. 시암어



에필로그

부록 1 귀츨라프의 조선 항해기

부록 2 귀츨라프의 편지

부록 3 세계 연구자들의 귀츨라프 연구 관련 협력동의 서신

부록 4 칼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귀츨라프 연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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