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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대 프레임 (모든 뉴스에는 의도가 있다)
프레임 대 프레임 (모든 뉴스에는 의도가 있다)
저자 : 조윤호
출판사 : 한빛비즈
출판년 : 2017
ISBN : 9791157841769

책소개

다음 대통령, 결정하셨습니까?

2017년 3월 10일.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역사적인 주문을 끝으로 대한민국 18대 정권은 막을 내렸다. 이제 19대 대선 주자들은 ‘조기 대선’이라는 운동장을 달리게 됐다. 유권자도 덩달아 바빠졌다. 변화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높지만, 무턱대고 표를 주기에는 정보도 시간도 부족하다.

프레임은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인 ‘인물’과 ‘구도’ 모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모든 정치인에게 프레임은 양날의 검이다. 『프레임 대 프레임』은 ‘프레임’으로 정치인을 가공해 온 기성 언론의 심리를 꿰뚫어보고, 그들의 기사를 한데 모아 대선 후보들을 입체적으로 그려보자는 발상에서 시작된 책이다.

저자는 유권자의 선택이야말로 언론과 정치 세력의 프레임이 성공하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한다. 대선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유권자의 피드백은 언론과 정치 세력이 형성하는 프레임에 거꾸로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언론의 프레임에 휘둘리지 않도록 든든한 우군이 되어줄 수도 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_대통령을 만드는 프레임 vs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프레임

언론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흑과 백, 혹은 단색에 가까운 보도를 한다. 이때 각기 다른 언론의 정치색을 모아 한 명의 인물, 하나의 사건을 구성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 책은 ‘프레임’으로 정치인을 가공해 온 기성 언론의 심리를 꿰뚫어보고, 그들의 기사를 한데 모아 대선 후보들을 입체적으로 그려보자는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대중은 필리버스터를 통해 처음으로 정치인의 말을 언론이라는 여과 장치 없이 보게 되었다. 그 결과 정치인이 싸우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괜찮은 정치인을 재발견하기도 했다. (중략) 대중이 알아차린 건 언론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언론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틀에 따라 무엇을 반영할지 반영하지 않을지를 결정한다. 언론의 권력은 이 결정권에서 나온다. 언론이 골라낸 정치인의 발언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필리버스터 생중계를 지켜본 사람들에게 이 권력은 매우 보잘것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_프롤로그 중에서

2016년 초, 야당 의원들의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에 많은 국민이 환호했다.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이렇게 똑똑한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간 우리가 접했던 정치인과 정당의 모습은 ‘날것’이 아닌, 언론의 필터를 거친 이미지였기 때문이었다.
대선이라는 ‘판’이 열리면 언론의 필터, 곧 프레임 전쟁은 최고조에 달한다. 저자는 유권자가 대선 주자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진보와 보수, 양 극단의 언론을 비교 분석했다. 바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그리고 한겨레다. 박근혜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정치인의 이미지가 아닌 ‘그 너머’를 내다볼 필요가 있다. ‘그 너머’를 내다보기 위해서는 언론이 어떤 식으로 정치인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자신들의 프레임 안에 집어넣는지 알아야 한다. 이 책은 언론이 차기, 혹은 차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하는 정치인들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언론이 어떻게 선거의 ‘판’을 짜는지를 집중 조명한다.

-조선일보는 ‘위험한 진보의 집권을 막기 위해’ 보수가 일치단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의 집권을 막기 위해 ‘문재인 아닌 것의 연합’까지 이야기할 정도다. 이들에게 보수의 개혁이란 보수의 통합을 뜻한다. 보수가 분열하는 순간 조선일보가 추상같이 화를 내는 이유다. 김무성은 독선적인 태도로 보수 통합을 해치는 박근혜에게 쓴소리를 해야 하지만, 자기 정치를 하거나 지나치게 대립각을 세워선 안 된다. 유승민도 통합을 해치는 박근혜를 견제하면서 보수의 재집권을 이뤄내야 하지만, 역시 ‘헌법 제1조’ 이야기를 하며 박근혜를 욕보여서는 안 된다.
-중앙일보는 조선일보처럼 진보 정치인의 불안전성을 부각시키기보다 진보 정치인과 보수가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나간다. 박원순에게는 토건을 통해 인기를 얻으라고 조언했다. “이재명이 가짜 보수를 조롱한 곳에서 유승민이 서민 경제론을 펼치면 불이 붙을 수 있다”고도 했다. 중앙일보가 보기에 포용성이 뛰어난, 즉 보수를 품을 수 있는 안희정은 ‘신진보’지만 포용성이 떨어지는 문재인은 ‘구진보’다.
-한겨레는 민중·민족·민주언론을 내세운다. (중략) 한겨레가 보기에 한국 사회가 진보하려면 이런 보수, 즉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정당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보수가 진보보다 우위에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 탓에 진보가 모두 하나로 뭉쳐 맞대응해도 겨우 이길까 말까다. 이런 이유로 한겨레는 늘 ‘진보의 통합’을 강조한다. 문재인이 성공하려면 보수 여당과 싸우면서도 진보 야당을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 진보 야당의 영역을 넓혀주는 안철수는 ‘땡큐’지만, 문재인과 싸우고 당을 깨버린 안철수는 ‘분열의 아이콘’이다

프레임은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인 ‘인물’과 ‘구도’ 모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모든 정치인에게 프레임은 양날의 검이다. 언론의 필터가 작동하면 하나의 사건, 한 명의 정치인을 두고도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온다. 정치인은 프레임 공격 한방에 무너질 수도, 프레임을 역이용할 수도 있다. 독자들은 세 언론의 비교 분석을 통해 한 정치인의 같은 행보를 두고 전혀 다른 논조의 기사가 나오는 장면을 생생히 목도하게 될 것이다.

_당신의 다음 대통령, 결정하셨습니까?
2017년 3월 10일.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역사적인 주문을 끝으로 대한민국 18대 정권은 막을 내렸다. 이제 19대 대선 주자들은 ‘조기 대선’이라는 운동장을 달리게 됐다. 유권자도 덩달아 바빠졌다. 변화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높지만, 무턱대고 표를 주기에는 정보도 시간도 부족하다.
저자는 유권자의 선택이야말로 언론과 정치 세력의 프레임이 성공하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한다. 대선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유권자의 피드백은 언론과 정치 세력이 형성하는 프레임에 거꾸로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언론의 프레임에 휘둘리지 않도록 든든한 우군이 되어줄 수도 있다.
그간 눈 질끈 감는 심정으로 차선도 아닌 차악을 선택해왔지만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5월 대선은 겨우내 광장을 지킨 1,500만 촛불이 만들어낸 선거다. 언론이 강요하는 후보가 아닌 자신만의 판단 기준이 필요한 때다.

책속으로 추가

단일화 이벤트는 안철수를 ‘낡은 정치’라는 프레임에 가두는 도구이자, 민주당의 무능함을 강조할 수 있는 도구였다. ‘안철수가 없으면 집권도 못하는 무능한 야당’이라는 논리였다. 문재인과 안철수 사이의 단일화 협상이 실패하면서 안철수는 2012년 11월 24일 후보직을 사퇴했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민주당과 문재인이 안철수의 눈치만 보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중략) 반면 한겨레에게 안철수와 문재인의 단일화는 낡은 정치가 아니었다. 단일화를 해야 새누리당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겨레는 이 상황을 두려워하는 새누리당이 단일화를 낡은 정치로 몰아가고 있다고 봤다. _〈안철수와 야당을 동시 공격하는 ‘지겨운 단일화’ 프레임〉 안철수 편

진보 언론에게 유승민이 박근혜를 비판하기 위한 도구라면 보수 언론에게 유승민은 보수의 재집권을 위한 도구다. 박근혜 밑에 유승민 같은 쓴소리맨이 있어야 지나친 독선에 빠지지 않고 보수가 다시 집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가 뭉쳐야 재집권할 수 있다’는 프레임을 내세우는 조선일보 입장에서 유승민이 박근혜와 지나치게 대립각을 세우는 건 곤란했다. 조선일보는 야당과 한겨레가 박수 친 유승민의 연설에 의구심을 내비쳤다. 너무 심하게 대통령을 비판하면 보수의 통합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_〈조선일보는 말리고 한겨레는 부추기는 희한한 싸움〉 유승민 편

한겨레는 유승민을 ‘보수도 분열한다’는 프레임의 도구로 활용한다. 이 프레임의 효과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대중에게 보수를 분열하게 만든 박근혜의 독선과 고집을 강조할 수 있다. 또한 보수를 ‘집안 싸움이나 하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묘사할 수 있다. 보수 언론이 진보 세력을 묘사할 때 즐겨 사용하는 ‘나라가 어지러운데 집안싸움이나 하고 있다’는 표현을 이제 보수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진보와 중도 성향 유권자들이 집안싸움이나 하는 진보 세력에게서 등을 돌리듯, 보수와 중도 성향 유권자들도 집안싸움만 하는 보수에게서 등을 돌릴 수 있다. _〈내부 개혁의 다른 말, 내부 분열〉 유승민 편

반기문은 ‘중도에 위치하라’는 보수 언론의 조언에 발을 맞췄다. 본인을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규정한 것부터가 그랬다. 꽃동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진도 팽목항 등을 찾아 서민 행보를 하다가도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고 천안함 기념관을 둘러보는 등 보수 행보를 동시에 이어갔다. 그러나 기존 정치인들의 행보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반기문은 어느새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의미의 ‘반반半半’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불리게 됐다. “촛불집회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가 “촛불집회가 변질됐다”고 입장을 뒤집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새로운 비전이나 프레임을 제시하지 못한 반기문은 결국 보수, 진보 모두의 지지를 잃었다. _〈언론에 끌려다닌 반반 행보, 결국 중도 하차로〉 반기문 편

이처럼 조선일보가 김무성에게 바라는 요구사항은 매우 이중적이다. 우선 보수의 재집권을 위해서는 친박 일색의 새누리당이 아닌 권력의 경쟁 구도가 필요하다. 조선일보는 김무성을 향해 계속 박근혜와 맞서 싸우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중략) 그러나 막상 김무성이 박근혜와 친박을 경계하고 싸우려는 태세를 취하면 이번엔 또 비판을 시작한다. ‘그렇게까지 싸우지는 말라’는 것이다. 김무성 입장에서는 ‘그럼 어쩌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을 법하다. _〈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서로 다른 시나리오〉 김무성 편

국회와 정가에 A씨가 김무성 사위라는 소문이 돌면 김무성이 직접 해명할 수도 있다. 그러면 유력 정치인의 이름을 먼저 공개하는 부담을 덜 수 있고 다 같이 단독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 한 기자는 “많은 데스크급 기자들이 김무성 대표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겠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누구에게나 같은 대응을 한 것 같다”며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어쩌겠노, 다 밝혀졌는데. 사실이다. 그놈이 마약했는데 몰랐다. 알았으면 결혼 말렸겠지.’ 친하니까 너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다음 덧붙인다. ‘전화한 사람 아무도 없고 니가 처음이다. 기사 쓸 기가’” _〈알고도 이름을 쓰지 않은 이유〉 김무성 편

착한 불도저 박원순과 그냥 불도저 박근혜를 비교하는 것은 조선일보가 만든 ‘대한민국 시장’ 프레임에 대한 한겨레의 반격이다. 조선일보는 박원순이 서울 시정을 살피는 데 만족하지 않고 ‘대한민국 시장’이 되려 한다며 ‘서울시장’과 ‘대한민국 시장’을 이분법적으로 분리시켰다. 이를 한겨레가 “대통령이 오죽 못하면 시장이 나섰을까”로 받아친 것이다. _〈“정부는 박원순처럼만 해라”〉 박원순 편

조선일보가 보기에 박원순은 불안정한 시민운동가이며 이재명은 위험한 포퓰리스트다. 문재인 역시 자신이 왜 북한에 유화적인지 끊임없이 설명해야 한다. 안철수도 마찬가지다. 보수인지 진보인지 분명하지 않을 때는 그를 등장하게 만든 정치권을 꾸짖었지만, 진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자 그를 비판했다. ‘4대강 사업’과 같은 보수 정부의 결정을 흔드는 안희정은 싫어하지만 ‘(집권해도) 복수하지 않겠다’는 안희정은 좋아한다. __〈그들이 원하는 리더 vs 우리가 바라는 리더〉 에필로그

정치인들과 그 지지자들은 프레임에 기반한 뉴스들을 ‘가짜 뉴스’라 부르고 싶을지 모른다. 당연히 그중에는 팩트를 왜곡한 뉴스도 있다. 하지만 팩트와 해석이 뒤섞인 뉴스도 많다. 안철수가 많은 국민을 답답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며 그 사실에 기초해서 ‘간철수’라는 별명이 나왔다. 이재명이 SNS상의 과격한 말로 논란에 휩싸인 것도 사실이다. 조선일보는 이에 기초해 그의 품성을 따졌다. 언론의 프레임 전쟁을 싸잡아 ‘왜곡하는 언론이 문제’라고 말하기 힘든 이유다. __〈그들이 원하는 리더 vs 우리가 바라는 리더〉 에필로그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프롤로그 | 박근혜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1부 | 대통령을 만드는 프레임 vs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프레임
1. 대한민국 프레임 전쟁의 현주소
-대한민국은 지금 프레임 전쟁 중
-상대의 프레임 안에서 싸우지 마라
2. 프레임이 만들어낸 대통령
-해명 대신 난장판 만들기
-프레임이 만든 꼭두각시 대통령
3. 언론에게 프레임은 왜 필요한가
-한국 언론의 후보 지지가 어려운 이유
-보수는 인간의 이성을 믿지 않는다
4. 조선, 중앙, 한겨레로 본 프레임 전쟁
-이념 보수 조선일보
-실용 보수 중앙일보
-한겨레의 탄생과 진보·보수 언론의 대립

2부 | 문재인의 ‘노무현’ 프레임 탈출기
1. 보수 언론의 프레임: 노무현을 반복하라
-정치인 문재인 vs 노무현의 비서실장
-노무현이라는 이름의 감옥
-이석기부터 성완종까지, 만능의 주문 ‘그런데 노무현은?’
-한겨레도 편들어주지 못하는 순간
2. “문재인은 확장성이 없다”
-나쁜 친구들
-“말리진 못할망정 단식까지 하는 대선 주자”
-보수 언론은 ‘답정너’
-야성이 필요하다
3. 2012년의 문재인 vs 2016년의 문재인
-NLL 대화록 논란에서 배운 것
-“고백하라”는 말만 반복한 보수 언론
-확장성 없는 후보 vs 준비된 대통령

3부 | 충남 엑소 안희정의 결말은?
1. 안희정, 벗어나거나 묶이거나
-“민주당은 안희정 보고 배워라”
-노무현에 갇힌 문재인, 노무현을 극복한 안희정
-‘소신 있다’는 칭찬 뒤에 감춘 의도
-안희정과 문재인은 “둘 다 우리 편”
2. 문재인에게는 없고 안희정에게는 있는 것
-SNS에서 퍼진 ‘충남 엑소’ 대세론
-정책보다 이미지로 소비되는 후보
-새누리당하고도 연정하겠다는 야권 도지사
-둘 다 잡으려다 둘 다 놓친다

4부 | ‘논란은 나의 힘’ 이재명이 사는 법
1. ‘포퓰리스트’라는 프레임
-“시장은 행정이나 해”
-조선일보의 이중 잣대 ‘음모론자 이재명’
-보수는 뭘 잘했나
-포퓰리스트 vs 진짜 보수
2. ‘전투형 노무현’의 등장
-‘소통하는 시장’이라는 프레임
-이재명을 방해하는 나쁜 정부
-사이다는 고구마를 이길 수 있을까
3. 문제는 과격함이 아니야
-직접 소통하는 대선 주자
-그의 총구는 어디를 향해 있나
-‘직접 소통’의 위험성

5부 | 간철수 vs 강철수
1. 새 정치를 낡은 정치로 만드는 방법
-안철수를 매개로 하고 싶은 말
-“양보도 단일화도 모두 정치쇼”
-안철수와 야당을 동시 공격하는 ‘지겨운 단일화’ 프레임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냐”
2. “안철수는 링 위로 올라와라!”
-나올 건가, 말 건가
-‘간철수’가 되다
-안철수가 모호해? 실체를 봐야지!
3. ‘야권 통합 만능론’의 저주를 벗어나다
-“야권 통합 안 하는 나쁜 철수”
-통합하면 이긴다고? 희망사항일 뿐
-야권 통합 만능론 깨뜨린 4·13 총선

6부 | 누구의 편도 아닌 유승민의 딜레마
1. 한겨레, “보수도 분열한다”
-진보 언론의 사랑을 받는 보수 정치인의 등장
-조선일보는 말리고 한겨레는 부추기는 희한한 싸움
-내부 개혁의 다른 말, 내부 분열
2. 당신, 보수 맞아?: 중도 보수의 딜레마
-한쪽에선 좌파, 다른 한쪽에선 부역자
-합리적 보수와 색깔론 사이
-험난한 중도 보수의 길

7부 | 조각난 기름장어의 꿈
1. 보수 언론의 프레임: 반기문은 제2의 안철수다
-‘중도’ 프레임에 넣어라
-중도 프레임에 담긴 보수 언론의 속내
-제2의 안철수, 실패도 답습하나
2. 한겨레, “반기문은 무능한 친박일 뿐”
-“정치 혐오 덕에 얻은 인기”
-“박근혜 아바타를 또 뽑자고?”
-외교 대통령? 무능한 사무총장일 뿐
3. 기름장어가 살아남는 법
-정치부 기자 바보 만들기
-욕먹기 싫어하는기 름장어
-언론에 끌려다닌 반반 행보, 결국 중도하차로

8부 | 김무성, 보스일까 쫄보일까
1. 무성 대장, 보수 혁신의 아이콘이 되다
-보수 언론이 하사한 ‘통 큰 보스’ 프레임
-보수 혁신으로 가는 두 가지 방법
-“답 없는극우파”
-한국에도 트럼프가 있다
2. 김무성과 박근혜가 싸우면 누굴 응원할까
-30시간의 법칙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서로 다른 시나리오
-한겨레, “보스인 줄 알았더니 쫄보네!”
-‘옥새 들고 나르샤’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3. 왜 기자들은 ‘김무성’ 석 자를 기사에 쓰지 못했나
-보스의 반말 활용법
-기자의 ‘급’ 따지며 대답해주는 정치인
-알고도 이름을 쓰지 않은 이유

9부 | 박원순, 당신 곁에 누가 있습니까?
1. 보수 언론의 프레임: 언제까지 시민운동 할래?
-“시민운동 같은 즉흥 행정”
-보수 언론의‘박원순 길들이기’ 프로젝트
-시장님 ‘토목’하세요
2. 진보 언론의 프레임: ‘착한 불도저’는 처음이지?
-“시민운동가라서 새 정치를 잘하네”
-착한 불도저
-“정부는 박원순처럼만 해라”
3. 홍보만 잘 하면 오해가 풀린다?: 박원순식 ‘일방 소통’
-LTE급 소통? 인권헌장 폐기 때는 없었다
-‘소통’=오해 풀고 잘 설명하기?
-당신 곁에 누가 있습니까?

에필로그 | 그들이 원하는 리더 vs 우리가 바라는 리더
[예스24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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