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메뉴

본문

조종이 울린다 (자본주의라는 난파선에 관하여)
조종이 울린다 (자본주의라는 난파선에 관하여)
저자 : 볼프강 슈트렉
출판사 : 여문책
출판년 : 2018
ISBN : 9791187700265

책소개

자본주의는 어떻게 종언을 고하는가?
최종 단계에 이른 글로벌 자본주의 이후에는 무엇이 올 것인가!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린 끝에 자본주의는 이제 위독한 상태다. 성장은 스태그네이션에 길을 내주었고, 불평등은 불안정으로 이어졌으며, 현금 경제에 대한 신뢰는 거의 증발해버렸다. 세계가 바야흐로 심대한 변화를 앞두고 있는 지금, 현대 정치학과 경제학에서 호평을 받는 분석가인 볼프강 슈트렉은 제2차 세계대전의 그림자 속에서 한데 뭉친 어울리지 않는 파트너들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이 종언을 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때 금융 부문의 무절제를 억제했던 규제기관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으며, 냉전 종식과 함께 자본주의가 최종적 승리를 거둔 이후 시장의 자유화를 물리칠 능력이 있는 정치적 행위자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성장둔화, 과두지배, 공공영역 축소, 제도적 부패, 국제적 무정부상태 등으로 규정되는 세계가 되었으며, 이런 병폐에 대한 치료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이제 세계는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나갈 것인가!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자본주의가 자초한 자본주의 사회의 종언 이후의 역사적 시기는 집단적인 정치 역량이 부족한 시기로서 우유부단하고 긴 이행기가 될 것이다. 새로운 표준이 된 위기, 변형적이지도 않고 적응적이지도 않으며 자본주의를 균형상태로 복원하지도, 더 나은 어떤 것으로 대체하지도 못하는 위기의 시기인 것이다. 심대한 변화들이 급속하고 지속적으로 일어나겠지만, 이 변화들은 예측할 수 없고 어쨌든 관리가 불가능하다. 서구 자본주의는 쇠퇴하지만 분명 전 지구적 차원에서는 비서구 자본주의가 그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하며, 서구 비자본주의도 그것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비서구 자본주의의 경우에 중국은 여러 이유 때문에 자본주의의 역사적 주관자 자리를 차지하면서 미래의 진보를 위한 질서정연한 글로벌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 또한 중국과 미국이 자본주의를 위해 세계를 안전하게 만드는 과제를 우호적으로 분담하는 공동이사회가 만들어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 상처뿐인 승리로 위기를 자초한 자본주의

막스플랑크사회연구소 명예소장이자 현대 경제사회학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볼프강 슈트렉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현대 자본주의를 정치적 거시사회학의 관점에서 진단하는 연구에 꾸준히 천착해왔다. 이 책은 그 노력의 일환으로서 현재의 자본주의가 사망단계에 이르렀으며, 이 체제를 대체할 그 어떤 대안도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공위기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슈트렉이 지적하듯 ‘자본주의의 종언’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1800년대 초 독일과 1800년대 중반 영국에서 처음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쓰인 시절부터 자본주의 이론은 언제나 위기 이론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만이 아니라 리카도, 밀, 좀바르트, 케인스, 힐퍼딩, 폴라니, 슘페터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급진적 비판 이론가들이나 부르주아 이론가들 모두 그들은 이런저런 식으로 자기 생전에 자본주의의 종말을 볼 것으로 예상했다. 어떤 종류의 위기가 자본주의를 끝장낼 것으로 기대되는지는 시기와 저자들의 이론적 선행 연구에 따라 달랐다. 과잉생산이나 과소소비, 또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마르크스)에 의한 구조주의적 종말 이론들이 욕구와 시장의 포화(케인스), 삶과 사회의 상품화 진전에 대한 고조되는 저항(폴라니), 축자적인 동시에 비유적인 의미에서 식민화에 필요한 새로운 땅과 새로운 노동력의 고갈(룩셈부르크), 기술 스태그네이션(콘드라티예프), 자유시장을 중단시키는 독점 대기업의 금융-정치조직(힐퍼딩), 전 세계적인 지식인의 배반에 의해 조성되는, 기업가 정신에 대한 관료적 억압(베버, 슘페터, 하이에크) 등의 예측과 공존했다.
‘폴라니주의자’인 슈트렉은 그 이론들 중 어느 것도 그들이 생각한 것처럼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그 대부분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고 진단한다. 나아가 1970년대 이래로 OECD 자본주의에 정확히 세 차례의 위기가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1970년대의 글로벌 인플레이션, 1980년대의 공공부채 폭증, 이후 10년 동안 민간부채의 급증에 따른 2008년 금융시장 붕괴. 이런 연속적인 위기는 대체로 모든 주요 자본주의 국가가 똑같이 겪었으며, 이 나라들의 경제는 1960년대 말에 전후戰後 성장이 끝난 이래 한 번도 균형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합리적인 예측을 했음에도 어떤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앞으로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위기야말로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직접 들어보자.

만약 반대세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면, 왜 자본주의는 그 결함이 무엇이든 위기에 처한 걸까? 1989년에 공산주의가 자멸했을 때, 이제 자본주의가 최종적 승리를 거두었으며 ‘역사의 종말’이 도래했다는 견해가 팽배했다. 2008년을 겪은 뒤인 오늘날에도 구좌파는 여전히 어디서나 멸종 직전에 다다른 반면, 새로운 신좌파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109쪽)

반대세력의 부재는 사실 자본주의의 자산이 아니라 불리한 점에 가깝다는 것이다. 사회체제가 번성하려면 내적 이질성이 필요한데, 단일한 목적에만 전적으로 몰두함으로써 결국 체제가 지속 가능하려면 역시 신경을 써야 하는 다른 목적들을 배제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는 조직원리의 다원주의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아는 자본주의는 이윤과 시장의 지배에 맞선 여러 대항운동의 부상에 톡톡히 혜택을 입었다. 사회주의와 노동조합운동은 상품화에 제동을 걸면서 자본주의가 자신을 떠받치는 비자본주의적 토대?신뢰와 선의, 이타주의, 가족과 공동체 내부의 유대 등?를 파괴하는 것을 막아주었다. (110~111쪽)
오랜 천착 끝에 저자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자본주의가 반대세력을 궤멸시킨 것은 사실 상처뿐인 승리였을지 모른다. 때로는 불편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지탱해주는 대항력을 떨쳐버린 것이다. 승리를 거둔 자본주의가 이제 자기 자신의 최악의 적이 된 것은 아닐까?”

◆ 현대 자본주의가 잉태한 체계적 무질서

1989년 소련의 몰락으로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를 위시한 정치경제적 반대세력에 최종 승리를 거둔 이후 걷잡을 수 없는 글로벌 신자유주의 물결이 이제 자본주의 자신의 목을 겨누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했다고 진단하는 볼프강 슈트렉은 지금이야말로 자본주의에 대해 재고해야 할 때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소위 주류 경제학이 무력해진 상황을 매우 흥미로운 징후로 바라본다. 자본주의는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이자 정치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거시사회학을 주창하는 슈트렉은 현대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주류 경제학적 시각이나 마르크스 경제학적 접근법 모두 현대 자본주의의 본성을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사회와 자본주의 경제의 경계선이 두 접근법에서 가정하는 것만큼 고정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실제로 지속적인 논쟁의 대상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 대안으로 슈트렉은 현대 자본주의를 역사적 관점, 문화적 관점, 정치체로서의 관점, 생활방식으로서의 관점 등 네 가지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진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 현대 자본주의는 불행히도 ‘장기 스태그네이션, 과두적 지배, 공공영역의 약탈, 제도적 부패, 글로벌 무정부상태’라는 다섯 가지의 치명적인 무질서를 잉태할 수밖에 없고, 이 무질서들이 자본주의의 미래를 제약할 공산이 크다고 밝힌다. 더 암울한 것은 이 치명적인 무질서를 바로잡을 역량을 갖춘 정치적 세력 혹은 행위주체들이 전무하며, 미국으로 대표되는 ‘건전화 국가’의 확산은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의 심대한 변형을 수반한다는 사실이다(“[건전화 국가는] 시장의 법칙에 대항해 사회적 형평성을 옹호하도록 설계된 인민의 정치 참여의 전통적인 제도들을 벗어 던진다. 사유화 때문에 공공재가 줄어든 곳에서는 정치적으로 결정할 일도 적어지고, 자본주의의 경제적 민주주의?1달러 1표?가 정치적 민주주의를 대체하기 시작한다.”)

◆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불협화음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살아가는 우리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본래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상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1945년 이후 지본주의는 마지못해 민주주의를 끌어안아야 했다. 그리고 반세기 이상 전후 자본주의의 진보를 이끈 엔진은 다름 아닌 민주주의의 무력화였다. 지금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이 와해되고 있으며 더욱 가속화하는 중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밝힌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쉽게 어울리지 못할 것이라는 의심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19세기부터 20세기가 한참 지난 뒤까지도 부르주아들과 정치적 우파는 다수의 지배는 필연적으로 부자에 대한 빈자의 지배를 함축하기 때문에 결국 사적 소유와 자유시장을 폐지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한편 부상하는 노동계급과 정치적 좌파는 자본가들이 경제적?사회적 재분배에 몰두하는 다수에 의해 영구적으로 지배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반동세력과 제휴해서 민주주의를 폐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비록 최소한 산업화된 세계에서만큼은 좌파가 민주주의를 위해 자본주의를 폐지할 것이라는 우파의 공포보다는 우파가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전복할 것이라는 좌파의 공포가 더 타당했다. (137쪽)

이제 자본주의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에 하나의 주권자가 아니라 두 주권자가 있음은 아주 분명하다. 아래쪽에 인민이 있고 그 위에 국제적 ‘시장’이 있는 것이다. 세계화와 금융화, 유럽 통합 때문에 인민은 약해지고 ‘시장’은 강해졌다. 힘의 균형은 이제 빠르게 상층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전에는 인민의 언어를 이해하고 말하는 지도자들이 요구되었다면, 오늘날에는 지도자들이 돈의 언어를 숙달해야 한다. ‘인민과 소통하는 사람people whisperer’을 계승한 ‘자본과 소통하는 사람capital whisperer’은 투자자들이 복리로 돈을 돌려받도록 보장하는 데 필요한 비밀기술을 알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투자자의 신뢰가 유권자의 신뢰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중도좌파나 우파는 자본의 절친한 친구들이 계속 권력을 넘겨받는 것을 문제가 아니라 해법으로 본다. (257~258쪽)

◆ 사회과학/사회학의 재발견과 복원

전 세계적으로 사회과학의 위상이나 인기가 확실히 예전 같지 않은 지금, 흥미롭게도 슈트렉은 현재의 글로벌 위기 상황이 사회학이라는 학문에 경제를 없애버리고 사회에만 초점을 맞추는 이론적 프로그램은 지속 불가능하다고 말해주는 강한 신호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사회학이 진즉에 외면해버린 ‘경제’를 다시 사회학 안으로 불러들일 절호의 기회라고 역설한다. 다만 ‘경제사회학’을 새로운 분과 학문으로 확립함으로써 경제를 다시 끌어들이려는 최근의 시도는 너무도 자주 ‘네트워크’로 시장을 보완하는 식으로 경제 거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대안적 처방을 제시하는 데만 몰두한다고 비판한다. 오늘날 많은 이가 현재의 금융?재정위기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회적 문제이며, 현대 사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요구하는 중대한 문제라고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사회학은 기능주의적 균형 모델과 영원히 결합한 것도 아니고 아직은 표준 경제학처럼 합리적 선택 이론에 완전히 열광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개인 이익의 합리적 추구가 안정된 질서를 낳을 수 있는 세계의 이미지로부터 쉽게 단절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호소한다. 사회학/사회과학의 위상과 공적 임무를 새롭게 정립하고 환기시키려는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칙적으로 근대에 대한 비판 이론이라는 역사를 가진 사회학은 이런 요구를 채우는 한편, ‘공중’에게 오직 위험을 무릅써야만 거부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할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사회학은 그 이름에 걸맞은 모든 사회 이론의 중심 주제로 경제를 복원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경제는 단지 비밀스러운 자연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과학 지식으로 무장한 기술자들에 의해 관리되는 부 창출의 중립적 메커니즘이 아니다. 하나의 학문으로서 사회학이 경제학과 체결한 학문 간 평화협정 없이도 유지되고, 또 초창기에는 자신과 동격이었으나 후에 ‘사회’를 전문으로 다루기 위해 포기한 정치경제학을 재발견하지 않는 한 이런 복원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위기의 당연한 결과로 대중 사이에서 표준 경제학의 평판이 역사상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진 지금보다 이런 복원을 위해 더 적절한 순간은 없다.
애초에 사회학이 경제학자들에게 경제를 양보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경제를 뺀 사회가 연구 주제로 가치가 있고, 또 거시경제학 없는 거시사회학이 현대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실행 가능한 접근법일 수 있다고 믿게 된 걸까? 사회적인 것을 경제적인 것에서?그리고 종종 정치적인 것에서도?분리하면 사회학에 도대체 무엇이 남을까? 흥미롭게도 사회학의 영역에서 경제를 배제한 것은 미국보다 독일에서 먼저 이루어졌는데, 내가 잘못 아는 게 아니라면, 단지 또는 주로 학문적인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분명한 정치적 이유도 크게 작용했다. (429쪽)

결론적으로 슈트렉은 이제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는 자본주의의 더 나은 변종을 찾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자본주의의 대안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게 더 나은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회학이 현대 자본주의를 이해하려면 20세기에 사회학을 창시한 인물인 탈콧 파슨스가 사회학을 위해 경제학과 학문적 분업을 교섭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피력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표적으로 스미스에서부터 파레토, 마셜, 케인스, 슘페터에 이르는 고전 경제학자들의 사회학과 베버, 좀바르트, 모스, 베블런 같은 고전 사회학자들의 경제학을 재발견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며, 이들 모두에게서 배워야 하는 교훈은 자본주의는 경제와 사회 둘 다를 나타내고, 자본주의를 연구하려면 경제와 사회를 분리하지 않는 개념 틀이 필요하다는 것, 따라서 현대 자본주의는 경제가 아니라 사회로, 즉 오늘날의 표준 경제학 이론이 아니라 사회학 이론의 영역에 해당하는 사회적 행위의 체계이자 일단의 사회제도로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이런 연구의 뒷받침 위에서 “중간계급 고용에 대대적인 위기가 닥치면서 모두가 자기만 챙기는 신자유주의적 삶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열광이 더는 조성되지 않을 때만, 또는 널리 퍼진 무질서가 개인적 기획과 야심을 대규모로 심각하게 좌절시키기 시작할 때만, 포스트자본주의 공위기간이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질서가 나타날 것이다”라고 결론짓는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그림 목록
본문에 관한 주석

서론

1. 자본주의는 어떻게 종언을 고할까?
2. 민주적 자본주의의 위기들
3. 고객으로서의 시민: 새로운 소비정치에 관한 고찰
4. 유럽 건전화 국가의 부상
5. 시장 대 인민: 민주적 자본주의와 유럽 통합
6. 헬러와 슈미트 그리고 유로
7. 유로는 왜 유럽을 분할시키는가?
8. 볼프강 메르켈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있는가」에 관한 논평
9. 현대 자본주의를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10. 프레드 블록의 「무엇의 다양한 변종인가? 우리는 여전히 자본주의 개념에 기대야 하는가」에 관하여
11. 사회학의 공적 임무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QuickMenu

  •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