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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나, 밀레나, 황홀한(리커버) (2022 서울국제도서전 <다시, 이 책> 선정작)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리커버) (2022 서울국제도서전 <다시, 이 책> 선정작)
저자 : 배수아
출판사 : 테오리아
출판년 : 2022
ISBN : 9791187789383

책소개

더 특별하게 다시 찾아온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배수아 소설집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이 개정증보판으로 다시 독자들을 찾아왔다. 새로 선보이는 개정증보판은 초판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과 〈영국식 뒷마당〉에 더해 중편 분량의 〈부엉이에게 울음을〉을 추가하였다. 또한 등단 초기부터 작가를 지켜본 신수정 평론가의 해설을 덧붙여 작품에 다가가는 길을 안내했다. 소설집의 세 작품은 각자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단편들과 느슨하고 자유로운 모종의 유대를 형성한다. 하나인 듯 여럿일 수밖에 없는 이들 작품의 사유의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우리의 실존에 숨겨져 있는 ‘느닷없는 삶의 한순간’과 만나게 된다. 한순간 삶의 비밀을 꿰뚫어 보게 만드는 어떤 시간의 도래.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을 읽는 작업은 바로 그 시간 속으로 침잠하는 경험이다.
또한 이번 개정증보판은 2022년 서울국제도서전 [다시, 이 책] 주제전에 맞추어 새로운 판형으로 표지도 새로 하였다. 디자인은 ‘2021년 한국의 아름다운 책 10권’ 선정 도서를 디자인하기도 한 이기준 디자이너가 맡았다. 디자이너는 글에 등장하는 배경, 물건, 개념 등을 그 구체성을 지우고 책의 물리적 요소로 치환해 켜켜로 포개거나 텅 비우는 식의 시각적 문법으로 번역했다. 번역의 결과는 흑지·격자 무늬 푸른 색지·크라프트지·트레이싱지의 네 겹의 표지와 소설과 소설 사이의 빈 페이지들, 제목도 지은이도 없는 앞표지로 파격적으로 표현되었다.
추가된 소설과 본격적인 작품 해설 그리고 새로운 디자인으로, 이 개정증보판은 초판보다 더욱더 황홀하게 독자들을 매혹할 것이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황홀한 매혹에 대하여
거의 등단 초기부터 배수아의 소설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이미지에 대한 매혹’이나 ‘자유로운 사유의 흐름’이다.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소설과 거리를 두려는 그녀만의 ‘뱀과 화염’의 장치는 그녀를 특징짓는 유니크한 인장이 되었다.
현실을 넘어 사유의 경계를 확장하는 꿈의 이미지나 목소리의 현전은 이 소설집에서도 여전히 두드러진다. 그런데 세 편으로 구성된 단출한 구성의 이 작은 소설집은, 기나긴 이야기의 사슬을 뚫고 나오는 ‘시적인 순간’의 ‘황홀한 매혹’이 유독 돋보인다. 무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삶의 우연과 존재의 중첩 속에서 어느 순간 생의 비의를 드러내는 에피파니(epiphany)의 순간이 명멸하고 있다. 우리는 이 시간의 마법을 통해 다양하게 ‘콜라주’ 된 서로 다른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 목소리들은 이제까지 그러하리라고 간주되어 온 여성에 관한 단일하고 동질적인 이미지를 넘어 살아 움직이는 다수의 여성‘들’의 실존을 감각적으로 복원해낸다. 이 소설집이 선보이는 시적 순간의 황홀은 이 복원의 기쁨과 무관하지 않다.

밀레나, 경희, 그리고 나
이렇게 복원된 살아 움직이는 다수의 여성‘들’의 실존은 이 작은 소설집의 ‘느슨한 연대’를 형성한다. 이 소설집은 독특한 플롯을 취하고 있다. 이는 “하나의 트로이 안에 또 다른 트로이가 있고 그 안에는 더 이전의 트로이가 묻혀 있으며 이전의 트로이 안에는 그보다 더 오랜 옛날의 트로이 폐허가 잠자고 있”(118쪽)는 플롯이다. 마치 커다란 인형 안에 더 작은 또 다른 인형이 숨어있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 같은.
“떠날 수 있다면, 나는 황홀할 거예요. 여기 가만히 있으면 내 밤이 영영 끝나지 않아요. 나를 데려가 주신다면, 나는 황홀할 거예요.”(42쪽)라고 말하는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의 ‘안경을 쓴 여비서’와, 금지와 혼자의 상징인 〈영국식 뒷마당〉의 ‘경희’ 그리고 열세 살 소녀인 화자는 서로 겹쳐있다. 가령 경희는 화자인 ‘나’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 생각에, 그래서 나는 마침내 영국식 뒷마당으로 가는 길을 찾아낸 거야.”(71쪽) 그리고 결정적인 말이 뒤따른다. “내 생각에, 너도 그렇게 될 거야.”(91쪽) 경희와 ‘나’는 구별되지 않는다. 마침내 ‘나’는 경희가 된다. 경희가 곧 ‘나’다.

미친 여자의 독백 같은 ······ 돌림노래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과 〈영국식 뒷마당〉을 관통하는 마트료시카 같은 여성들의 시간은 뒤섞이고 중첩된 시간이다. 여러 차원의 시간대에 동시에 거주하며 미래에서 과거를 보고 과거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자를 우리는 ‘셔먼’이라고 부른다. 〈영국식 뒷마당〉의 화자 ‘나’에게 던져진 경희의 예언은 카산드라의 주술에 버금간다. 그러나 선조적인 일상의 시간에 비추어볼 때 그녀의 예언은 ‘미친 여자’의 독백과 구별되지 않는다. 경희의 목소리는 이해하기 힘들고 무의미한 소리에 가깝다. 그러나 바로 그 결과 이 목소리는 음악이 되어 신비한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이 소설들에는 소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공기 중에 부유하는 기타 소리와 밀려왔다 밀려가는 수백 수천의 작은 종소리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대한 메타포이다. 그것은 모든 주술적 음악이 그러하듯 돌림노래의 후렴구처럼 영원히 되돌아왔다가 또 되돌아나가며 일정한 리듬을 반복한다.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방해하는 사이렌의 노래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 반복적인 돌림노래는 매혹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이 매혹은 불현듯 주체를 찾아와 그 또는 그녀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에피파니가 찾아오는 것은 바로 그 순간이다.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의 오디세우스 험윤은 젊은 여성의 목소리로 화한 사이렌의 절박한 호소를 물리치고 집으로 귀환하는 길에 복도 가운데 놓인 금이 간 거울을 마주하는 순간 어떤 각성에 직면한다. “삶에는 일순간이 있다.”(49쪽) 〈영국식 뒷마당〉의 에피파니는 다분히 환멸적인 데가 있다. 백지의 노트를 읽는 경희의 목소리에 절대적인 매혹을 느끼던 ‘나’는 불현듯 그녀가 “오직 자신이 읽고 있는 그 이야기로만 존재한다는 것”(93쪽)을 깨닫는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나는 울고 싶었다.”(95쪽) ‘나’는 “어쩌면 경희는 바보일지도 모른다”(95쪽)고 각성한다. 이 각성은 쓰라릴 수밖에 없다. 그 ‘바보’가 바로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예언적 명명 때문에. 내 생각에, 너도 그렇게 될 거야······. 돌림노래처럼 떠도는 셔먼의 목소리. 여성적 마트료시카의 끝은 완전한 무, 영원한 폐허이다. 그것은 여성이 처한 실존적 상황과 관련한 가장 뼈아픈 깨달음이다.

다락방의 ‘홀로’ 글 쓰는 여자
그러나 이 쓰라린 각성은 글 쓰는 여자의 출발점일 수 있다. 〈부엉이에게 울음을〉에서 두 번째 이혼을 결정한 스물아홉 살의 ‘나’는 막연하게 작가가 되면 어떨까 하는 마음을 먹는다. 두 사건, 곧 ‘이혼’과 ‘작가가 되는 것’은 얼핏 보면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인다. 화자 역시 두 사건을 ‘막연하게’라는 부사로 연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두 사건이 나란히 병치되는 순간, 그들 사이에는 모종의 인과성이 개입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 소설의 화자는 “다락방의 먼지에서 홀로 자라난 아이였다.”(116쪽) 화자에게는 산더미 같은 책이 쌓여 있던 ‘다락방의 시간’이 있다. 학교를 그만두고 집을 떠난 이후 단 한 권의 책도 소유하거나 읽지 않으며 유년 시절의 ‘다락방’을 잊고 살던 화자는 우연한 일로 책들의 요새라고 할 만한 남편의 작업실을 방문한 뒤 자신의 다락방을 기억해 낸다. 그리고 다락방은 그냥 거기 그대로 있었을 뿐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다만 자신이 그곳을 떠나왔을 뿐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각성은 “무한한 현기증”(157쪽)으로 이어진다. 이 현기증은, ‘나’를 강타하는 다음과 같은 자각, 요컨대 “정말 이상한 일이기는 하지만,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 어쩌면 나는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위대한 작가나 대단한 작품을 써서 이름이 알려지는 그런 작가가 아니라, 오랫동안 자신의 회귀를 기다려온 다락방을 가졌기 때문에 결국 그곳에서 홀로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작가”(157~158쪽)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초래하는 강렬한 존재의 전율 같은 것이다.
문제는 이 ‘에피파니’가 남편에 대한 상징적 처벌과 자발적 고립으로 이어지는 지점이다. 남편은 화자의 다락방의 시간을 알지 못한다. 다락방의 시간은 ‘나’를 규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경험인 만큼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나’의 존재 자체를 오인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부부의 파탄과 이혼은 다락방의 아이였던 자신의 과거를 기억해 내고 오랜 시간 억압해온 작가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누설한 ‘나’의 선언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배수아는 제각기 다른 듯 서로 닮은 세 편의 소설들을 통해 “하나의 트로이 안에 또 다른 트로이가 있고 그 안에는 더 이전의 트로이가 묻혀 있으며 이전의 트로이 안에는 그보다 더 오랜 옛날의 트로이 폐허가 잠자고 있”(118쪽)는 여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점점 더 과거인 것을 향해, 점점 더 어떤 특정한 시간을 향해 점점 더 빠르게 수렴됨을 느끼는”(118쪽) 여성 시간 탐험가의 원형을 보여준다.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은 ‘트로이로 가는 흐릿한 지도’이다.

리커버 디자인에 대하여-디자이너 이기준의 말
책이 단지 글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시각적 번역물이 되길 바랐다. 표지에는 글에 등장하는 배경, 물건, 개념 등을 끌어와 구체성을 지우고 책의 물리적 요소로 치환해 켜켜로 포갰다. 이를테면 기억, 환영, 그림자, 다락방, 흙, 무덤 등을 흑지로, 욕조, 타일, 책, 편지, 아파트먼트 콤플렉스, 이끼, 풀, 정원, 호수, 책들의 바다 등을 격자무늬가 쳐진 푸른 색지로, 낡은 책더미를 크라프트지로, 스크린, 거울, 이쪽과 저쪽의 경계, 문, 다락방의 먼지, 황홀경 등을 트레이싱지로 치환하는 것이다. 글 사이의 빈 공간은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완충지대이자 편지지, 불명확한 시간, 죽은 꿈들, 읽히지 않은 페이지, 부엉이의 울음, 일어나지 않은 사건, 이해할 수 없는 꿈이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설명은 한 가지 예시일 뿐이니 독자마다 자기 방식으로 디자인을 읽었으면 좋겠다. 여러 겹의 문을, 바라보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5
영국식 뒷마당 69
부엉이에게 울음을 113

해설∥신수정 (문학평론가, 명지대 교수)
하나의 트로이 안에 또 다른 트로이가……
-여성(들)의 이야기와 마트료시카의 시간 205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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