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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고니즘 (한중일의 문화 심리학)
안타고니즘 (한중일의 문화 심리학)
저자 : 지상현
출판사 : 다돌책방
출판년 : 2020
ISBN : 9791190311038

책소개

한중일 세 나라의 감성적 기질을 파헤치면, 선입견을 뒤집어 쓴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이 아니라 감성적 밀고 당김을 반복하는 입체적 인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감성의 길항이라는 도구를 갖고 떠나는 동아시아의 미술사, 건축사, 공예사, 복식사, 문화사 그랜드투어.



안타고니즘(antagonism; 길항작용)은 생물학적 개념이다. 생물은 최적화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글루카곤과 인슐린, 아드레날린과 아세틸콜린,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등은 모두 서로 반대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면서, 즉 서로 밀고 당기면서 생명을 유지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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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안타고니즘, 밀고 당김의 문화심리학
안타고니즘(antagonism; 길항작용)은 생물학적 개념이다. 생물은 최적화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글루카곤과 인슐린, 아드레날린과 아세틸콜린,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등은 모두 서로 반대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면서, 즉 서로 밀고 당기면서 생명을 유지해나간다.
자연과학을 사람 세상에 곧바로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위험이 클수록 보상도 큰 법이다. 〈〈안타고니즘-한중일의 문화심리학〉〉은 생명체의 길항작용을 사람 세상의 문화심리에 적용하는 작업이다. 저자 지상현은 오랫동안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의 감성을 옛 미술품을 가지고 연구해왔다. 공동체의 집단적인 감성 선호를 바탕으로 하는 문화, 공동체가 함께 만들고 전승해온 문화는 삶의 현장에 녹아 들어가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공예품이나 민예품과 같은 옛 미술품은 문화의 유전자와도 같다.
지상현은 한국, 중국, 일본의 공예품과 민예품을 포함한 옛 미술을 가지고 세 나라 문화의 유전자를 연구해왔다. 그의 앞선 책 〈〈한국인의 마음-오래된 미술에서 찾는 우리의 심리적 기질〉〉(2011)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가까우면서도 먼 두 공동체의 심리적 기질을 조울증적 기질과 우울증적 기질로 분석했다. 한국과 일본을 살펴본 그는 중국으로 범위를 넓혔다. 기존 연구를 정교하게 다듬고, 중국을 포함시켜 〈〈한중일의 미의식-미술로 보는 삼국의 문화 지형〉〉(2015)을 내놓았다. 두 책이 연구자가 발표하는 치밀한 결과물의 성격이었다면, 이 책 〈〈안타고니즘-한중일의 문화심리학〉〉(2020)은 좀더 선이 굵은 통찰을 바탕으로 한다. 문화는, 문화를 만드는 공동체의 심리는,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역사와 사회는 ‘밀고 당김의 메커니즘으로 구성된다’는 10년 동안의 연구에서 얻어낸 통찰이다.

다큐멘터리 또는 그랜드투어
이 책은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을 가진 이웃 나라 사람들을 단정하지 않고, 복합적으로 이해하려 시도한다. 이 시도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독자는 마치 친절한 과외 선생님과 함께 세 나라를 직접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한중일 세 나라의 문화심리학을 밀고 당김의 길항으로 설명해나가는 과정에서 저자는 과거와 현재의 미술품, 건축물, 복식과 축제, 문화현상 등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다룬다. 덕분에 독자는 한국, 중국, 일본 곳곳에 흩어져 있는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감성적 밀고 당김의 메커니즘을 직관할 수 있다.
저자는 여행지의 문화해설사가 되어 지역의 문화와 역사와 종교를 압축해 들려주고, 기념비적 건축물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는 팁을 주며, 여행자가 스치기 쉬운 원주민의 골목으로 독자를 이끈다. 친절한 문화해설사는 지역의 오래된 또는 독특한 축제로 안내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저자는 때로 미술관과 박물관의 도슨트, 영화와 소설 리뷰어, 전통 복식 스타일리스트가 되기도 한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상류층의 문화부터 서민의 문화까지, 한중일 세 나라의 어제와 오늘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저자의 발걸음과 동행하는 과정에서 독자는,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있는 느낌 또는 그랜드투어(Grand Tour)를 떠난 17세기 유럽 귀족의 자제가 된 기분을 선물받는다.

개방과 폐쇄의 중국인
중국인의 감성적 기질에서 밀고 당김은 ‘개방과 폐쇄’다. 토루(土樓)는 중국 서남부 푸젠(福建) 성 용딩(永定) 현, 장저우(?州) 난징(南靖) 현 및 화안(華安) 현에 있는 집단주택 단지다. 2008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토루의 시작은 중국 송나라 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방에서 세력을 키운 금나라가 밀고 내려오자, 중원 지역에 살던 하카(客家)인들은 이를 피해 푸젠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금을 피해온 하카인들은 푸젠에서 원주민의 공격을 받았다. 이에 하카인들은 방어를 위한 공동주택 토루를 짓는다.
토루는 1층 출입구 말고는 밖으로 통하는 문이 없고, 바깥쪽 진흙 벽의 두께는 2m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각 집은 외벽을 따라 안쪽으로 공간을 나누어 배치된다. 보통 1층은 식당과 부엌, 2층은 창고, 3층부터 주거용이다. 한 토루에 사는 주민은 씨족 공동체인 경우가 많아, 토루 중앙에는 조상의 신위를 모시고 집회도 하는 조당이 있다. 큰 토루에는 수백 명이 살았다고 하니, 온 마을 사람이 한 집에 사는 셈이다. 폐쇄적 기질의 흔적이다.
폐쇄적 감성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밀고 당김의 개방적 감성이 있어야 한다. 중국 윈난(雲南) 성 숭성사(崇聖寺)의 초대형 삼탑을 보자. 숭성사 삼탑은 중국 당(唐) 시기 남조(南詔)의 7대 왕인 소성왕(昭成王)이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 탑 가운데 가장 높은 사각탑은 13층, 69.13m이다. 옆의 팔각탑도 10층에 42m다. 탑은 멀리 보길 바라는, 전망에 대한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멀리 있는 것을 보려면 멀리 가거나,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높은 곳이 없다면 무엇인가 높이 쌓고 그 위에 올라야 한다. 멀리 보려는 욕구로 중국 사람들은 높은 탑을 짓는다.
탑은 탑파(塔婆)의 준말이다. 탑파는 산스크리트어인 스투파(stu-pa)를 한자어로 음차한 것으로, 스투파는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기념물로 인도가 그 기원이다. 인도에서는 흙이나 벽돌로 스투파를 만들었는데, 둥근 모습이 바가지를 뒤집어 놓은 모습이다. 높이가 있지만 하늘로 치솟은 느낌은 아니다. 그런데 부드럽고 완만하던 스투파가 중국으로 들어오자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전망(개방)’에 대한 욕구다. 중국의 탑들은 안이 비어 있고, 사다리나 계단이 있어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다. 탑에 오르면 사방을 내려다 볼 수 있고, 개방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폐쇄적 주거공간이 주는 답답증을 풀어줄 한 줄기 바람과도 같다.

축소와 확장의 일본인
부츠단은 불단(佛壇)을 일본 발음으로 읽은 것이다. 한국에서 불단은 사찰 법당 안에 있지만, 일본 부츠단은 보통 가정집에 있다. 685년 덴무 덴노(天武天皇)가 각 가정에 불단, 불상, 불경을 둘 것을 명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있지만, 부츠단이 일반 가정에 보급된 것은 에도 시대로 알려져 있다. 부츠단에는 작은 문처럼 보이는 장식이 있는데 이는 사찰 정문을 본 뜬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부츠단은 법당의 모양을 따라서 만들었다.
일본에서는 독실하게 불교를 믿지 않아도 집에 부츠단을 들이는 풍습이 있다. 이는 일본의 장례문화와 관계가 있다. 일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날 밤 오츠야(通夜)를 치른다. 부츠단 앞에 시신이 안치된 관을 놓고 유족과 친지가 둘러앉아 고인을 추모하는 의례다. 이때 부츠단 안에 작은 불상이나 만다라를 넣어두는데, 불공을 드릴 때는 문을 열고 끝난 후에는 문을 닫거나 흰 천을 덮는다. 부츠단에는 향, 촛대, 신주와 종을 설치하고 단 위에는 과일 등 제사 음식을 놓는다. 최근에는 반려동물을 위한 부츠단을 두는 경우도 늘었다고 한다.
부츠단은 절에 있는 대웅전(일본에서는 대불전이라고 함)을 축소해 놓은 것이다. 절에 있는 대웅전을 줄이고 줄여서 굳이 집에 두었을 때의 장점은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에서 절대적 존재는 세상의 모든 일에 관여한다. 태풍과 지진 등 천재지변이 많은 일본의 자연환경 속에서 일본인들은, 절대적 존재가 다루고 있을 재난 앞에서 무기력해졌을 것이다. 이는 통제에 대한 욕구로 나타난다. 절대적 존재를 자기 집에 위치시키면, 필요할 때마다 불러내 기도할 수 있다. 감성적 기질로서의 통제 욕구는, 구체적인 실천으로 축소를 불렀다.
축소가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밀고 당김의 확장이 있어야 한다. 도다이지(東大寺)의 〈노사나불(盧舍那佛)〉은 부츠단과는 반대인 확장의 감성적 기질이 작용했다. 일본 나라(奈良) 시 나라 현에 있는 도다이지(東大寺)는 헤이안 시대 건설된 세계 최대의 목조건축물이다. 쇼우무 덴노(聖武天皇)가 부처의 힘을 빌려 재앙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일본 곳곳에 사원 설립령을 내렸고, 도다이지는 751년 완공되었다. 도다이지는 초기 일본 불교에서 율령 체제 아래 6개 종파의 총괄 지도 사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목조건축물이라는 말은 숫자로 확인해볼 수 있다. 도다이지 대불전이 창건될 때 정면은 11간(間) 86m였다고 하는데, 1709년에 다시 지으면서 7간 57m로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계 최대의 목조 법당이다. 대불전의 높이는 47.5m이며, 대불전 안에는 높이 14.98m의 거대한 〈노사나불〉이 앉아 있는데 원래 있던 불상은 3배 정도 더 컸다고 한다. 도다이지를 짓고 〈노사나불〉을 만들던 때, 일본 전체에서 청동을 끌어모아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대규모 건축으로 당시 경제가 위기에 빠질 정도였다고 한다. 도다이지의 불상과 대불전을 건설하는 데 260만 명 이상이 공양했다는 기록도 있다.
집 한쪽 구석에 대웅전을 들이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즉 언제든 절대적 존재와 소통하기 위해 사찰을 축소했으면서, 왜 이렇게 거대한 사찰을 짓는 것일까? 전혀 다른 행동 같지만, 통제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한 밀고 당김으로 보면 설명할 수 있다. 절대적 존재가 천재지변을 관장한다면, 절대적 존재에게 닿을 수 있는 규모를 갖추려는 전략이다. 절대적 존재조차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공양한다면, 그만큼의 은덕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질 필요가 있다. 도다이지와 〈노사나불〉의 규모와 크기는, 절대적 존재마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한다면,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의 결과다. 천재지변 앞에서 통제욕구에 대한 갈증은 일본 사람들에게 깊게 새겨진 감성적 기질이 되었을 것이다.

덤벙과 강박의 한국인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김후신(金厚臣)의 〈대쾌도(大快圖)〉는 18세기 작품이다. 술자리를 하던 일행이 대취한 한 명을 집으로 데려가는 모습을 그렸다. 대취한 지인을 끌고 가는 일행의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은 어느 날 밤 술자리에서 본 것만 같다. 입을 벌리고 끌려가는 사람은 수염이 없다. 가장 어린 탓에 제일 먼저 취했는지도 모른다. 자기 주량도 모른 채 넙죽 받아 마시다 이 지경이 되었을 것이다. 노래 한 가락을 뽑으면서 끌려가는 취객의 맨 뒤에서 고개를 묻고 힘주어 미는 사람의 자세, 그 곁에서 잡아끄는 사람의 동작도 그럴듯하다. 그림 속에서 만취한 이의 흥도, 만취한 이를 부축하고 있는 사람들의 조금은 곤혹스러웠을 속마음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대쾌도〉는 격식을 벗어던진 술자리의 자유로움을 천진하게 그렸다. 그리고 이 풍경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도자기에 유약을 입힐 때 유약을 풀어놓은 그릇에 덤벙 담갔다고 꺼내 올린 데서 비롯한 덤벙 기법처럼, 그림 속 이야기와 기법 모두 덤벙스럽다. 중요 특징 몇 곳에 집중하되 남은 부분는 휘적휘적 그려나간 기법과, 불편한 격식을 벗어버리고 술과 흥에 취한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덤벙’이다. 풍속화, 실생활에 쓰인 분청자기 등에서 이런 덤벙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덤벙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밀고 당김의 강박이 있어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기해기사계첩(己亥耆社契帖)〉의 신임(申?)의 초상화를 보자. 기사(耆社)는 조선시대에 치러진 행사다. 70세가 넘은 정이품(正二品) 이상의 중신을 우대하는 모임이다. 숙종이 직접 참여해 축하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격이 높은 자리였다. 〈기해기사계첩〉은 1719년 4월 17일, 18일에 있었던 모임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했다. 12부를 만들어 1부는 관에서 보관했고, 11부는 참석한 중신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화원(畵員) 김진여(金振汝)는 신임을 그리면서 터럭 하나까지 닮게 그려야 한다는 가르침을 강박적으로 따른 것으로 보인다. 중국 북송의 유학자 정이천(程伊川)은 영정을 그릴 때 미화하거나 과장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정이천의 말에 대한 해석은 영정 본연의 기능 강조, 허례허식의 회피 등으로 갈라질 수 있으나, 그의 말만큼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 말을 강박적으로 따랐다. 그림에는 미화나 과장이 없다. 노인의 얼굴에 핀 검버섯이나 주름까지도, 내려앉은 눈꺼풀 등은 지나치게 정확한 묘사다. 〈대쾌도〉를 한 단어로 표현할 때 ‘덤벙’이었다면, 신임의 초상화는 ‘강박’이 적당해 보인다.

단순하지 않다
한국, 중국, 일본은 몸을 맞대고 있는 이웃이다. 중국에서 난로를 때면 한국 하늘에 미세먼지가 쌓이고, 일본 앞바다에서 잡힌 물고기는 한국 밥상에 오른다. 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구 문명이 알파벳을 공유하듯이, 동아시아는 오랫동안 한자(漢字)를 함께 써왔다. 덕분에 한중일에서 고전(古典)으로 여겨지는 책은 겹친다.
그러나 불과 몇백 년 사이에 서로에 대한 이해를 포기하고, 때로는 혐오의 감정마저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상황까지 되었다. 이해는 줄고 오해가 늘면서, 서로를 단정하는 말만 늘어났다. ‘한국 사람은 대충대충한다’ ‘일본 사람은 작게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중국 사람은 전 세계를 집어삼킬 셈이다.’
단정하는 말은 내뱉을 때는 시원할 수 있으나, 주워 담을 때 곤란해지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람은 무엇이든 대충대충하는 듯 보이나, 완벽에 가까워지기 위해 집착하기도 한다. 일본은 작게 만드는 것을 잘 하고 좋아한다. 2018년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가고시마 현 우치노우라(?之浦) 우주공간관측소에서 미니 로켓(모델명 SS-520)을 발사했다. 지름 52cm, 높이 9m로 기네스북에 등록된 가장 작은 로켓이지만, 초소형 위성도 탑재했다. 그런데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을 때는 야마토나 무사시 같은 초대형 전함을 만들었다. 한편 중국은 늘어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를 집어삼키려는 야욕(?)에 불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동쪽 끝의 헤이룽장(黑龍江) 성부터 서쪽 끝 신장위구르(新疆維吾爾) 자치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서 베이징을 기준으로 한 중국 표준시를 쓴다. 중국은 동서로 약 5,200km 너비의 땅이니, 5개의 시간대를 써야 한다. 알래스카를 뺀 미국 본토는 4개, 캐나다는 6개의 시간대를 쓰며, 러시아는 지역에 따라 11개의 시간대를 쓴다. 이런 이유로 중국은 접경 지역에 있는 국가들과 시차가 생긴다.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있는 도시 카슈가르에서는 오전 8시가 되어 한창 출근을 준비하고 있지만, 인접한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는 아직 새벽 4시다. 땅이 넓은 나라치고는 보기 드문 폐쇄성이다.
이 책 〈〈안타고니즘-한중일의 문화심리학〉〉은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을 단선적으로 규정하는 편리함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다.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한국, 중국, 일본의 집단적 문화 감성은 어느 한 가지 특징으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각각의 문화 감성은 서로 밀고 당길 수 있는 대비되는 감성적 기질의 길항 작용의 결과다. 다만 어느 한 쪽이 우세했을 때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단선적으로 규정했을 뿐이다. 이 밀고 당김을 확인하려면 과거와 현재의 미술품과 문화에서 흔적을 찾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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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0. 프롤로그 9

플라스틱 바구니 9 / 시간이 직접한 디자인 10 / 모순이나 선입견이 아닌, 길항의 메커니즘 13 / 대립, 항상성, 문화 15 / 마음은 논리적인가 17 / 원형 혹은 심리적 욕구 21



1. 개방과 폐쇄의 줄다리기 25

움직이는 문화 25 / 폐쇄성 26 / 721번의 전쟁 31 / 생존 32 / 폐쇄의 또 다른 얼굴, 통제 35 / 폐쇄와 개방의 밀고 당김 37 / 이상향 속의 개방과 폐쇄성 46 / 남중국의 있음직한 풍경 54 / 편안한 한국의 산수화, 장식성의 일본 산수화 64 / 폐쇄와 개방의 감성 69



2. 강박과 이완 혹은 강박과 유연성 73

별난 취미의 중국인 73 / 유기달도 75 / 곡예적 강박 77 / 집중력과 노력을 감상하다 82 / 문인화와 유기달도 87 / 자유와 개성을 찾아 88 / 감각의 세계 93 / 서예에 담긴 문인의 욕망 96 / 탈 왕희지 100 / 강박과 이완의 감성 103



3. 덤벙주초와 석굴암 107

소나무를 닮은 덤벙 문화 107 / 흐트러짐과 단정함의 대비 112 / 바람의 옷과 통제의 옷 115 / 마음이 중하지 솜씨가 중한가 122 / 추사체의 다양성과 유연성 126 / 조용한 아침의 나라와 신명 128 / 극정밀 고려미술을 만든 마음 129 / 터럭 하나까지 닮게 그려라 135 / 한글, 세상의 이치를 따지다 139 / 덤벙의 문화와 이념적 강박 141 / 조울증권형 마음 143



4. 축소와 확장 149

주위를 맴도는 죽음 149 / 능동성이 주는 생의 기운 153 / 통제하고 예측하려는 축소 155 / 사방이 막힌 섬나라의 표준 159 / 기하학적 규칙성과 압축 169 / 주지적 미술양식 174 / 심화지향 178 / 통제와 예측을 위한 확장 181 / 물량공세 185 / 두 개의 검, 축소와 확장 186 / 통제의 감성 189



5. 센리큐와 사무라이 193

와비사비 193 / 고우라이모노, 오리베야키, 라쿠차완 197 / 작위적인 비작위 202 / 늠름함, 단순성의 사무라이 문화 212 /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무라이 214 / 금을 두른 사무라이의 성곽 217 / 센리큐와 사무라이의 대결 222



6. 벌집형 집단주의 227

둥근 것이 알려주는 성격 227 / 곡선 대 직선 228 / 한국과 중국의 집단주의 232 / 벌집 속의 일본식 집단주의 237 / 집단주의 속의 개인주의 241 / 일본의 집단주의적 마음 246



7. 추상 대 감각 249

집단주의와 추상적 사고 249 / 감각중심적 상형문자 251 / 중국인의 시각중심성 254 / 전형성 258 / 관계중심적 세상 262



8. 탐미와 허무 269

금지된 캔버스, 피부 269 / 탐미라는 탈출구 273 / 새로운 미에 대한 갈증 276 / 미적 대상의 확장 277 / 오랜 기다림과 거대한 것의 충돌 281



9. 한과 해학과 신명 289

고통과 싸우는 예술 289 / 배부른 벼슬아치들은 아무 생각이 없네 292 / 스스로에게 향하는 분노, 한 294 / 멀리서 보면 다 별일 아니더라 297 / 심리적 긴장을 완화하는 해학 301 / 샤머니즘과 신명의 문화 304 / 조울증권형의 필연, 한과 신명의 대비 307



10. 토비와 유가의 싸움 311

정의보다는 의리, 협객의 나라 311 / 무협 문화의 시작 314 / 분노의 배설 315 / 토비와 군자의 겨루기 317



11. 죽음과 영혼 323

요괴의 등장 323 / 자연재해를 일으키는 알 수 없는 것들 327 / 신이 된 유령 329 / 자연과 작위의 이분법 331 / 상상력 335



에필로그 339



참고문헌 342

찾아보기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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