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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그램의 희망
0.1그램의 희망
저자 : 이상묵,강인식
출판사 : 랜덤하우스코리아(주)
출판년 : 2008
ISBN : 9788925530284

책소개

한국의 '스티븐 호킹' 이상묵 서울대 교수
전신마비의 장애를 딛고 삶의 희망을 쏘아 올리다!

〈뉴욕 타임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등 세계적 언론이 주목한 인간 승리의 드라마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0.1그램의 희망』은 MIT 출신의 해양학 박사 '이상묵' 서울대 교수의 감동적인 인생 역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전신마비에 굴하지 않고 인간이 얼마만큼 강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이상묵 교수의 긍정적인 삶의 모습을 담았다. 그는 교수로서, 학자로서, 장애인의 재활과 독립을 돕는 여러 사업에도 참여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해양학에 대한 열정 하나로, 많은 업적을 쌓으며 연구에 몰두했던 세계적 과학자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사고.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공동으로 진행한 야외 지질연구에서 예기치 않았던 차량 전복사고로 전신 마비가 되지만, 엄청난 사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 다시 교단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러한 그의 이야기는 세계 언론의 집중 관심을 받으며 큰 화제가 되었다.

현재 이상묵 서울대 교수는 두 가지 삶을 살고 있다. 과학자로서 사고 전과 변함없이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장애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뺨을 움직이고, 입김을 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라고 여길 정도로 긍정적이었다. 결코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그의 모습은 장애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삶의 표본이 되어줄 것이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한국의 스티븐 호킹’ 이상묵 서울대 교수의 희망 편지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자기 삶에 대한 사랑과 긍정 그리고 희망

〈뉴욕 타임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등
세계적 언론이 주목한 인간 승리의 드라마


하늘은 모든 것을 가져가고 희망이라는 단 한 가지를 남겨 두었다.
그리고 희망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긍정에 대해 배웠다.
삶의 이유는, 앞으로 나아갈 이유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 자신의 길을 찾는 모든 이들을 위한 나침반 같은 이야기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한, 너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을 보며 꿈을 키운 한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한국으로 돌아와 낯선 교육 환경 속에서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내며 해양학자가 되는 미래의 자신을 꿈꾸었다. 그리고 그는 서울대학교와 MIT에서 오랜 수련을 거친 끝에 세계적인 해양학자가 되었다. 그가 자신이 꿈꾸었던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끈 것은 뛰어난 성적이나 두뇌가 아니었다. 단지 그에게는 꿈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자기 삶을 사랑했으며,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중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의 장애를 입었을 때, 그는 한 순간 운명을 원망했다. 하지만 몸이 마비되었다고 해서 자신의 오랜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여전히 살아 있었고, 그랬기에 아직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또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영혼의 무게에도 못 미치는 실낱같은 희망을 조금씩 키워 나갔다.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들려주는 꿈과 희망의 메시지”
이 책 〈0.1그램의 희망〉은 자신의 꿈을 이룬 한 과학자의 일대기이자, 삶을 승리로 이끈 한 위대한 인간의 기록이다. 이 책 속에는 청소년 시절에 품었던 자신의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간 위대한 과학자의 족적과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삶의 숭고한 여정이 담겨 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 속에는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자신이 품은 꿈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 땅의 모든 청소년들이 귀 기울여야 할 메시지들로 가득하다. 세계 명문대학의 학생들이 사회적인 성공이라는 미망에서 벗어나 자신의 분야에서 1인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에서는 청소년 세대들이 꿈꾸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또한 한 순간의 좌절로 인해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는 고통 속에서도 우리가 삶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 이상묵! 그는 끝내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은 강인한 인간 정신의 상징이자, 크나큰 좌절에도 삶의 목표를 잃지 않은 자기경영의 진정한 고수였다.

■■□ 지구과학의 불모지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 과학자

“한 톨의 씨앗 같은 꿈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이상묵 교수가 해양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아버지와 처음 가졌던 ‘남자 대 남자’의 대화에서 불쑥 아버지가 해양학을 공부하라는 언질을 준 것이다. 해양학이 무엇인지, 과학자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 채 그는 막연하게 이때부터 해양학자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이재에 밝았던 그의 아버지는 이후 한의학을 공부하라는 압력을 가한다. 그에게 해양학자의 꿈을 심어 준 사람도 아버지였고, 그 꿈을 꺾고자 했던 사람도 아버지였다.
재수 끝에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에 진학한 이상묵 교수는 2학년 때 해양학을 전공으로 선택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해양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다지 비전이 없다는 사실을 곧 깨닫는다. 그가 생각하는 최악의 인생 시나리오는 ‘서울대 출신’이라는 타이틀로 아버지가 취직시켜 준 금융회사(그의 아버지는 은행에서 오랫동안 일했다)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유학을 생각하고 국비 유학생 시험을 치른다. 그리고 그는 두 번의 도전 끝에 국비 시험과 MIT-우즈홀 공동학위 과정에 동시에 합격한다.

“MIT-천재들의 게임”
외국의 선진 학문과 기술을 익혀 나중에 ‘잘나가는 과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유학길에 올랐지만, 그는 학문을 대하는 MIT 학생들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제야 “유학은 선진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던 어느 교수의 충고가 가슴에 와 닿았다. 그래서 그는 응용과학을 전공하겠다는 처음의 생각을 버리고 순수과학의 길로 들어선다.
MIT에서 보낸 9년 6개월의 시간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전 세계의 천재들이 집결한 그 치열한 세계 속에서 펼쳐지는 천재들의 게임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상묵 교수는 이 천재들의 틈바구니에서 좌충우돌하며 차근차근 성장해 간다.

“세계적 대양연구에 동참하다”
MIT에서 학위를 받은 뒤 우즈홀 해양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던 이상묵 교수는 당시 중앙해령과 수산자원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 영국 측의 제안을 받아들여 더램 대학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는 미국과 유럽, 일본이 경쟁적으로 벌이기 시작한 대양 탐사의 세계적 연구에 영국 측 연구원으로 동참한다. 연구와 탐사에 참가하는 동안 그는 인도양, 대서양, 태평양, 남극해 등 지구의 거의 모든 바다를 항해하며 활발하게 활동을 펼쳐 나간다.

“한국 해양학의 새로운 역사를 쓰다”
본래 해양학이란 돈이 많이 드는 선진국 학문이다. 이상묵 교수가 유학길에 오를 때만 해도 한국은 변변한 탐사선 한 척 갖추지 못한 해양학의 불모지였다. 그래서 선진국들이 해양자원 탐사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바다의 영역을 확장해 가던 시절에도 한국은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88올림픽 이후 나라의 경제 규모가 커지자 국제사회의 ‘물품 구입’ 압력이 거세졌다. 한국 정부는 결국 200억 원 규모의 첨단 탐사선을 구입하기에 이른다. 이 탐사선의 이름은 ‘온누리호’다. 하지만 온누리호는 건조된 원래의 목적대로 쓰이지 못했다. 한국에는 아직 온누리호의 첨단 장비를 활용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없는 탓이었다.
영국 더램 대학의 연구원으로 있던 이상묵 교수는 일본으로 향하는 길에 한국에 잠깐 들렀다가 당시 정부출연기관의 연구소장으로부터 한국에 들어오라는 제의를 받는다. 사실 이상묵 교수가 이 제의에 대해서 느낀 매력은 ‘한국’이 아니라 ‘온누리호’였다. 첨단 탐사선의 수석 과학자가 되어 마음껏 대양을 연구하는 것. 그의 오랜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상묵 교수는 ‘선진국의 과학’과 ‘한국의 과학’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있음을 깨닫는다. 착실하게 학문적 성과들을 쌓아 가는 영국이나 미국과 달리 한국은 당장 돈이 되는 사업에만 지원을 했다. 그러다 보니 정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한 과다 경쟁이 발생하고 사업성과를 부풀리는 행태가 만연했다.
한동안 한국 정부의 과학정책에 적응하지 못하던 이상묵 교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해당 기관의 기관장이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지원금을 활용할 수 있는 기관고유사업을 따낸 것이다. ‘서태평양 종합대양연구’라는 이름의 이 연구사업을 실현하기 위해 이상묵 교수도 ‘뻥’을 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한국의 동료 과학자들과 심사위원들도 이상묵 교수의 노골적인 ‘뻥’을 알면서도 눈감아 준다.
이상묵 교수는 지금까지 국제 관계상의 문제로 인해 거의 탐사되지 못했던 인도네시아 북쪽 해역에 대한 해양조사를 실시하면서 동아시아 지반 안정성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는 한편 해저확장에 대해 새로운 가설을 세울 수 있는 여러 가지 증거를 포착한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학계에 발표했고, 남부 필리핀 해와 캐럴라인 판에 관한 세계 최고의 권위자가 되었다. 전 세계의 지구과학계에서는 이상묵 교수가 탐사했던 지역을 ‘이상묵의 부동산’으로 인정하고 있다.

■■□ 장애인의 희망이 되다

〈b“휠체어에 앉아 한국인의 마음을 열어젖힌 과학자”

2008년 3월 5일, 국내 거의 모든 언론이 단 한 사람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이상묵.
그는 어깨 아래를 전혀 쓸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다. 그리고 서울대 교수다. 언론들은 그의 이름 앞에 ‘한국의 스티븐 호킹’, ‘강단에 선 슈퍼맨(낙마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를 빗댄 표현이다)’ 등의 수식어를 붙였다. 다음 날부터 그의 연구실은 각 미디어에서 파견된 취재진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취재진들 사이에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3월 19일, 미국의 〈뉴욕 타임스〉가 이상묵 교수의 사연을 크게 다루었다. 같은 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도 장애인의 귀감이 된 그의 이야기를 실었다. 세계적 언론을 통해 그의 기사가 전해지자, 전 세계의 동료 과학자들이 축하 메시지를 전해 왔다. 매년 지구물리학회가 열리는 샌프란시스코 시의회에서도 그를 초청하면서 정기회의 때 표창을 하겠노라는 의사를 밝혔다. 언론에 처음 노출된 이후 약 두 달 반 동안 그의 강의실에서는 방송 카메라가 떠나지 않았다.

이상묵 교수가 서울대학교 교수로 임용된 것은 2003년 12월이었다. 다음 해 봄 학기부터 강의를 시작했다. 물론 그때 이상묵 교수는 사지가 멀쩡한 정상인이었다. 사고를 당한 것은 2006년 7월 2일이었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서울대가 공동으로 진행한 야외 지질연구의 마지막 코스였던 데스밸리(Death Valley)로 향하던 중 사막 한가운데에서 차가 전복되었다. 이 사고로 이상묵 교수는 네 번째 척추가 완전 손상되어 전신이 마비되었다.
사고를 당한 지 6개월 만인 2007년 1월 2일에 그는 학교로 복귀했다. 그는 자신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의사들, 가족, 병문안 왔던 동료 과학자들 모두가 그의 건강 회복을 위해 숨겨온 한 가지 사실을 뒤늦게 안 까닭이었다. 그나마 사고 당시 다친 사람이 자신뿐이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당시 제자 한 사람이 죽었던 것이다. 그의 이야기가 세상에 늦게 알려진 데에는 그런 사연이 있었다.

■■□ 휠체어 위의 과학자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감사해야겠다.”
사고를 당하고 사경을 헤매는 동안 이상묵 교수는 여러 형태의 죽음을 경험했다. 처음에는 왜 여기까지 오게 해 놓고 갑자기 무대에서 끌어내리느냐며 알 수 없는 어떤 존재를 원망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44년 동안 살아오면서 자신이 본의 아니게 해를 끼쳤던 이들에게 용서를 구하기 시작했다. 과학자로 크게 성공하면 언젠가 모든 영광을 나누고자 했던 자신의 진심을 보여 줄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시간이 더 지나자 그는 자신의 삶이 이기적이었음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감사해야겠다.’

“더 큰 세상에 눈을 뜨다”
하늘이 자신을 돌려보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누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아직 완성하지 못한 과학자로서의 꿈도 남아 있었다. 사고를 당하고 하늘이 모든 것을 가져갔지만, 과학자로서 활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은 남겨 놓았다.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으며, 뺨을 움직이고 입김을 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라 여겼다. 무게로 따지면 0.1그램도 안 될 것 같은 그 희망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러자 예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삶의 보석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매순간 매순간이 하늘이 내린 선물이었다. 하늘은 모든 것을 가져가고 희망이라는 단 한 가지를 남겨 두었다. 그리고 희망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긍정에 대해 배웠다.
삶의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희망을 잃지 않는 한 우리는 모두 영웅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격려와 위안이 아니라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현재 이상묵 교수는 두 가지 삶을 살고 있다. 그 첫 번째는 과학자로서의 삶이다. 그는 IT기술과 보조공학기기를 통해 세상과 폭넓게 소통하며 여전히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친다. 두 번째는 장애인으로서의 삶이다. 하지만 이상묵 교수는 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 드라마의 주인공이나 상징적인 존재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용기를 내라든가 희망을 잃지 말라는 등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메시지는 장애인의 삶을 개선시킬 수 없다. 필요한 것은 사회적 시스템과 인식의 전환이다.
언론의 관심이 많이 사그라진 지금, 이상묵 교수는 여느 교수들과 마찬가지로 강의를 준비하고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아 주기를 원한다. 이상묵이라는 존재를 알리고 싶은 것이 아니다. 장애를 겪으면서도 정상인처럼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이다. 보조공학기기와 IT기술의 도움을 받으면 얼마든지 정상적으로 삶을 살 수 있고, 직업 활동을 할 수도 있다. 단지 조금 느리고 불편할 뿐이다. 이상묵 교수는 많은 장애인들과 만나기를 원한다. 지난 2년 동안 장애인으로서 살아오면서 알게 된 지식과 경험을 전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44년 동안 정상인으로 살아 봤으니, 나머지 인생은 조금 다르게 살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기적은 이미 일어났다”
이상묵 교수는 장애를 인정하는 순간, 희망이 생겼다고 말한다. 다시 일어설 수 있고, 팔을 쓸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만 집착했다면, 그는 학교에 복귀할 수도, 과학자로서의 삶도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육체적으로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회에 복귀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언젠가 이상묵 교수는 동료 교수에게 “기적이 일어날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그 동료 교수는 “기적은 이미 일어났다”고 대답했다. 장애인이 육체적으로 회복하는 것만이 기적이 아니다. 스스로의 한계를 이겨내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 가족이나 타인의 보살핌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를 보살피고 책임지는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 역시 기적이다.
이상묵 교수는 이 책이 장애인을 위한 실질적인 정보를 줄 수 있는 책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많은 장애인들이 세상 속으로 돌아올 용기를 낼 것이라는 믿음을 다지고 있다. 기적은 이미 일어났다. 그가 다시 용기를 낸 순간, 희망을 다시 찾은 순간, 그 모든 기적은 시작되었다.

※ 이 책의 판매로 인해 발생하는 저자의 수입 전액은 ‘서울대학교 이혜정 장학금’에 기부된다. ‘이혜정’은 사고 당시 목숨을 잃은 이상묵 교수의 제자 이름이다. 이 교수는 제자를 기리기 위해 5천만 원을 출연하여 장학기금을 조성했다.

※ 이 책의 원고는 강인식 기자가 이상묵 교수의 진술, 주변 사람들의 증언 등을 채집하여 글로 구성하여 완성한 것이다. 초교가 완성된 이후 이상묵 교수와 강인식 기자는 서로 의견을 조율하면서 원고를 수정해 나갔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프롤로그
휠체어 위의 과학자

하늘은 모든 것을 가져가시고 희망이라는 단 하나를 남겨 주셨다
원시 지구의 흔적을 찾아 나선 13인의 탐사대|캘리포니아에서 맺은 인연들|데스밸리의 어두운 그림자|내 인생의 감시자, 오토노믹 디스리플렉시아

바다를 꿈꾸다
자카르타에서 보낸 어린 시절|야호, 반에서 48등이나 했어!|해양학자가 되는 길|MIT, 전쟁 같은 나날들|처음부터 다시 시작|숀 솔로몬, 지독한 천재와의 만남|세계적 연구에 동참하다|천재들의 게임|보금자리를 꾸미다|킬리안 코트

태평양에 서다
영국에서 시작한 새로운 도전|예스야, 노야?|탐욕과 두려움|26년 만의 자카르타行|태평양에 울려 퍼진 메리 크리스마스

나에겐 멈출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
랜초에서의 재활 트레이닝|나를 살린 것은 줄기세포가 아니라 IT기술이었다|형, 한 체급 올렸다고 생각해|당신의 사소한 배려가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AGU 모노그래프|학교에 돌아오다|내가 세상과 만나는 방법|AOGS|‘한국의 스티븐 호킹’, 쑥스러운 별명을 얻다|Life on a wheelchair|슈퍼맨 with IT

에필로그_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벗고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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