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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초 (연인들, 정이현 장편소설)
사랑의 기초 (연인들, 정이현 장편소설)
저자 : 정이현
출판사 : 톨
출판년 : 2012
ISBN : 9788954618182

책소개

정이현, 지금 이 시대 이 순간의 사랑 이야기!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 정이현과,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의 일상과 감성을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작가 알랭 드 보통. 두 작가가 ‘사랑, 결혼, 가족’이라는 공통의 주제 아래, 각각 젊은 연인들의 사랑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부부의 사랑을 그렸다. 2010년 4월부터 2012년 4월까지 2년 동안, 두 작가는 함께 고민하고 서로의 원고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어 두 권의 장편소설을 펴냈다. 정이현의 소설 『사랑의 기초: 연인들』은 이 시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이십대 남녀들이 겪을 법한 평범한 연애의 풍경을 담아냈다. 운명이라 믿었던 두 사람의 사랑, 그 사랑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꿈, 그리고 그것이 무너져가는 과정을 때로는 달콤하게, 때로는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첫사랑도 마지막 사랑도 아닌, 바로 지금 우리의 사랑

다른 곳에서 발생해 잠시 겹쳐졌던 두 개의 포물선은
이제 다시 제각각의 완만한 곡선을 그려갈 것이다.
그렇다고, 허공에서 포개졌던 한순간이
기적이 아니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 정이현 & 알랭 드 보통 공동기획 장편소설!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 그 독보적 선두”라는 수식으로 요약되는 사랑스럽고 매혹적인 작가 정이현. 위트와 지적 성찰이 결합된 우아하고 예민한 글쓰기로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의 일상과 감성을 정밀하게 포착해내는 작가 알랭 드 보통. 이들 두 작가는 ‘사랑, 결혼, 가족’이라는 공통의 주제 아래, 각각 젊은 연인들의 싱그러운 사랑과 긴 시간을 함께한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장편소설을 집필하기로 하였다. 2010년 4월부터 2012년 4월까지 꼬박 2년 동안, 작가들은 함께 고민하고, 메일을 주고받고, 상대 작가의 원고를 읽고, 서울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원고를 수정하여 마침내 두 권의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 정이현이 쓰는 마지막 연애소설

정이현의 『사랑의 기초_연인들』은 21세기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이십대 남녀들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평범한 연애의 풍경을 담은 작품이다. 작가는 이십대 후반의 민아와 준호, 운명이라 믿었던 두 사람의 사랑을, 그 사랑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꿈을, 그리고 그것이 허물어져가는 서글픈 과정을 때로는 바닐라향처럼 달콤하게, 때로는 가슴 아프도록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사랑의 기초_연인들』은 정이현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자 마지막 연애소설이며, 생동감 넘치는 현재진행형의 사랑 이야기다.

“사랑이 뭐야? 누군가 물은 적이 있다. 느낌표라고 대답했다. 꼿꼿하게 허리를 곧추세운! 두 해 전 일이다. 지금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그런 답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2012년 봄. 사랑을 위한 문장부호로 나는 느낌표 대신 말줄임표를 고르겠다. 지난 이 년 동안 내 마음은 어디론가 천천히 이동했다. 그 길 위에서 이 소설을 썼다.” ?작가의 말 중에서

“사랑, 하면 우리는 두 가지를 기대한다. 피와 드라마, 눈물로 가득한 처절한 비극이거나 혹은 두 연인이 ‘영원히 행복하게 잘살았다’는 해피엔딩의 익숙한 약속처럼 아름다운 것이길 바란다. 하지만 정이현은 어느 한쪽의 상투적 결말을 선택하기엔 매우 영리하고 흥미진진한 작가다. 평범한 남녀의 흔해빠진 사랑 이야기는 그녀의 손을 거쳐 생명을 얻어 그 생생함이 우리 마음에 잔잔한 슬픔의 물결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뛰어난 작가들이 그러하듯, 정이현은 신문 같은 데에선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간의 마음 아래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는 정이현의 목소리는 대담하고 독창적이다.” -알랭 드 보통의 추천사

★ 첫사랑도 마지막 사랑도 아닌, 바로 지금 우리의 사랑

1. 남녀는 어떻게 만나 사랑에 빠지나
82년생으로 이제 막 서른에 접어든 이준호는 서울의 중위권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웹에이전시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후배가 주선한 소개팅 자리에 나가려고 셔츠를 고르면서 그는 과거에 여자친구와 싸웠던 순간의 곤혹스러운 기분을 떠올린다. 만난 지 ‘이백 일’을 기억하지 못한 그에게 토라져 시작된 말다툼은 결국 남녀관계에서 ‘안정’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차이로 인해 이별로 귀결되고 말았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애인을 사귀려는 목적으로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을 소개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우습고 괴상한 일인지 알 수 있다. 차라리 지하철 같은 칸에 탄 아가씨와 사귀게 되는 일이 쉬울 것 같았다. 아니, 우연히 한입 베어 문 맥도날드 햄버거에서 죽은 생쥐의 꼬리털이 발견되어 수억 원의 보상금을 타는 일이 지금은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아, 어리석은 희망이여. 그는 자책했다.”(「돌연한 시작」 15쪽)
준호의 소개팅 상대는 그보다 두 살 어린 의류회사 인사관리 부서에서 근무하는 박민아다. 소개팅에 나가려고 머리를 감으려던 그녀는 샴푸가 떨어진 것을 알고 낭패감을 느끼며 자신이 아직도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자각하게 된다. 공무원인 부모님은 당신들이 현직에 있을 때 결혼적령기인 맏딸의 혼사를 치르고 싶어 채근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결혼이란 ‘개인적인’ 욕실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칫솔모가 한껏 벌어진 낡은 칫솔들이 식구 수대로 꽂혀 있는 공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녀가 좋아하는 달콤한 바닐라향의 샴푸를 오로지 혼자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 상상을 할 때면 이상하게도 남편이라는 존재는 투명인간처럼 그 실체가 떠오르지 않았다.” (「돌연한 시작」 17~18쪽)
이렇게 두 사람은 각자 몇 시간 뒤면 만나게 될 상대에 대해 서로 다른 기대를 품은 채 약속장소인 카페로 향한다. 작가는 이십대 남녀가 만나는 방법 중 가장 흔한 경우인 소개팅 자리에서 두 주인공의 첫 만남을 성사시킴으로써, 이번 소설에서 담아내려고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즉, “지금 이십대의 방식으로, 이십대들이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사랑”의 풍경을 솔직하게 담아내는 것이다. 소개팅 상대를 만날 것인지 결정하기 전에 미리 휴대폰으로 상대의 프로필과 사진을 받아보는 것이라든가, 만남 후에 애프터 신청을 문자메시지로 하는 것 등은 초등학교 때부터 휴대폰을 갖고 다녔던 이십대들에겐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만나고 있던 몇 시간 동안 호감을 표현한 남자가 문자를 보내오지 않자 여자는 이틀씩(?!)이나 초조해하고, 문자를 보낸 여자에게서 답이 오지 않자 남자는 실망하며 걱정한다. 여자가 휴대폰의 스팸 차단 기능에 ‘우리’라는 단어가 포함된 메시지를 설정해두었기 때문에, 남자가 ‘우리 다음에 언제 볼까요?’라는 문자를 보냈기 때문에, 그들이 각자 서로에게 품었던 ‘긍정적인 감정’이 상대에게 가 닿지 못했다는 사실은 둘 다 꿈에도 알지 못한다.

2.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역사가 있다
박민아의 연대기: 초등학교 교사인 이순미는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했다 낙태한 경험이 있고, “1980년 전후 동아시아 미혼 여성들의 보편적인 윤리 감각을 거스를 용기”가 없어서 그 남자와 결혼했다. 하지만 남편은 물론 시댁 식구들에 둘러싸인 삶은 낯설고 불편했으며 시어머니와는 말을 섞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냉랭했다. 매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야 하는 바쁜 엄마 때문에 주로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민아. 그녀에겐 할머니에 대한 연민의 감정과 엄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늘 공존했고,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전략으로 관계에서 적극적이진 않아도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감한 소녀가 되었다. “어색한 순간이면 먼저 웃어버리는 그녀의 버릇은 그러나 부단한 노력의 결과였다. 그녀의 성장 과정은 인간관계에서 선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워가는 과정이었다. 먼저 짓는 미소는 이를테면 먼저 쏘는 총알이었다.”(「최초의 타이타닉」 57쪽)
이준호의 연대기: 쌀집 큰딸에 부지런한 처녀였던 송혜자는 명동의 유명 제과점에서 사온 과자 상자를 내민 이종필이 ‘도시 남자’라서 결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 ‘도시 남자’는 아내를 서울이 아닌 경기도의 반지하 전세방에 부려놓고 늘 밖으로만 나돌다가, 가끔 집에 들어올 때면 어김없이 ‘빚’을 달고 들어온다. 큰아들이 남편을 빼닮았기에 송혜자는 둘째로 ‘남편을 닮지 않은 딸’을 원했고, 안타깝게도 둘째 역시 아들이었지만 다행히 곰살맞기가 딸 못지않았다. 준호는 바로 그 ‘딸 같은 아들’ ‘작은 이준호’로 자랐다.
준호는 가정에 무책임하면서도 언제나 당당하고 뻔뻔한 아버지를 미워했지만, 평소엔 아버지를 욕하면서도 가끔 집에 들어오는 날엔 그가 좋아하는 청국장을 끓여내는 어머니도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세상의 모든 열두살짜리 소년들에게 아버지는 새로 돋아나기 시작하는 턱수염 같은 존재다. 맥없이 연하던 솜털이 어느 순간 뾰족하고 뻣뻣한 것으로 바뀌어 있다. 그러나 견딜 수밖에 없다. 그것이 열두살이다. 성인 남자를 칼로 찌르거나 불태워버리기엔 힘의 균형 축이 지나치게 기운다.”(「두 아이」 46쪽) 이런 유년의 기억은 그가 누군가와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가장이 되는 일에 대해 막연하지만 분명한 공포감을 갖게 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민아와 준호의 유년기 모습을 통해 작가는 비록 지금은 사랑에 빠져 서로의 장점과 공통점을 발견하는 즐거움에 몰두하는 연인이라도 결국 언젠간 서로의 차이와 단점들을 파헤치는 과정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열정의 한가운데에 있는 연인은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고자 하며, 따라서 상대에게 달라붙어 있는 과거의 경험과 기억에 눈길을 줄 겨를이 없다. 하지만 그것은 그/그녀의 일부분이며 지금 내가 매혹된 사람은 바로 그러한 부분들이 합쳐져 형성된 존재다. 따라서 누군가와 연인이 된다는 것은 “달콤한 케이크 위에 사뿐 올라앉은 체리뿐만 아니라 오븐에서 너무 늦게 꺼낸 식빵의 가장자리처럼 누추한 삶의 모서리까지도” 감내해야 하는 일이 된다. (「자발적 오독」 117쪽)

3. 첫사랑의 힘
민아와 준호 모두 이번 연애가 처음은 아니었다. 헤어진 이유나 시점조차 모호한 첫사랑을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은 서너 차례 사랑과 이별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들이 현재의 연애 패턴을 만들어가는 데 첫사랑의 경험은 중요하게 작용한다.
열일곱의 민아는 같은 반 남학생 지훈으로부터 영화 의 주제곡 가사를 적은 연서를 받고 첫사랑에 빠졌다. 평범한 모범생에 가까웠던 민아와 달리 지훈은 비밀이 많은 아이였다. 그는 또래의 고등학생들과 달리 자율학습도 하지 않고 밤늦게 ‘거리의 냄새’를 풍기며 독서실로 불쑥 찾아오곤 한다. 민아는 일방적으로 기다려야 하는 관계에 지쳤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키스를 시도하는 지훈에게 “이러려고 날 만나는 거야?”라는 금기의 질문을 던지고 만다. 아무런 대답 없이 지훈이 떠나버린 뒤로 민아는 관계가 어그러질 기색이 보이면 먼저 자신이 이별을 통보하게 되었다. “그 남자는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그녀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당신과는 다른 이야기」 79쪽)
한편, 준호의 첫사랑은 동네 교회의 중고등부 동기인 소라였다. 그녀는 예배 때마다 피아노 반주를 맡아 하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소라가 불쑥 그에게 함께 을 보러 가자고 제안한다.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막 첫 키스를 하려고 할 때부터 준호는 옆자리의 여자아이를, 그녀가 내뱉는 숨소리와 향기와 몸의 작은 움직임들을 팽팽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그것이 소라라는 특정한 개인에 대한 매혹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가 스크린 속 여배우와 같은 육체를 가진 ‘여자’이기 때문인지 섬세히 구분해낼 능력”은 그에게 없었다. (「최초의 타이타닉」 67쪽) 하지만 소라와 사귀는 일은 ‘여자친구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윤리적 당위감과 끓어오르는 성적 충동 사이에서 갈등하며 엄청난 자제력으로 욕망을 통제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둘의 관계는 준호가 군대에 가고 제대할 무렵까지 끊길 듯 계속 이어졌지만, 결국은 누구도 서로에게 이별을 고하지 않은 채 관계는 끝나고 만다. 이후 준호는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는 자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게 되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악역을 선택하기보단 그저 시간이 해결해주길 기다리는 미적지근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4. 사랑이라는 기적 또는 착각
각자 자신만의 궤도를 그리며 움직여가던 두 개의 포물선이 어느 한순간 공중에서 조우하는 것은 기적이다.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날 뻔했던 민아와 준호는 그로부터 사흘 뒤 동네 도서대여점에서 밤늦게 마주치고, 그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운명’이라고 믿기에 충분한 우연이었다. 작가는 남녀가 사랑에 빠져드는 순간의 심리를 예민하게 포착해 절묘한 문장으로 완성시킨다.
“패션에 관심 많은 또래의 여자들에게는 약간 촌스럽다는 평가를 들을지도 모를 (민아의) 봉긋한 퍼프소매의 원피스도 그의 눈에는 깜찍해 보였다.” 샐러드를 주문해 함께 나누어 먹는 사소한 일을 가지고도 “민아는 이 남자가 관대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했고, 준호는 이 여자가 소탈하기까지하다고 생각했다.” (「기다리다」 97~98쪽) 또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사들이는 데 월급을 가장 많이 쓰고 기계에는 무관심한 민아가 휴대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꾸지 않고 2년 동안 사용했다는 말에 준호는 “다른 여자들하고 다르게 검소”하다고 해석한다. (「자발적 오독」 119쪽)
사랑의 황홀경에 취한 연인의 한없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오해’의 증후를 작가는 이렇게 요약한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젊은 연인에게 한없이 평범해 보이는 매일의 일상, 그 틈새에 숨겨져 있는 치명적인 운명의 조각들을 찾아내는 일은 경이로운 놀이였다. 그 신비롭고 아름다운 우연의 세목들을 하나하나 헤아려보다가 자신들이 마침내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사실은 진실로 기적이 아닐 수 없다고 그들은 감격했다.” (「기적의 비용」 109쪽)
민아와 준호는 상대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려 노력하고, 동시에 상대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치는가에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들은 상대를 정확히 알고 이해하려고 노력을 기울이기보단 그가 어떤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이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여긴다. 무한한 너그러움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이들의 태도는 다른 한편 책임을 회피하려는 심리에서 비롯한 방임이다. 그 이면에는 그/그녀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지 않은 심리, 자기 자신이 주인공인 이 낭만적 서사의 판타지를 깨고 싶지 않은 마음, 관계에서 있어 타인보단 자기 자신에게 더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미성숙한 태도가 숨겨져 있다.

5. 열정 뒤에 오는 것
결국 이들의 ‘기적 같은 사랑’은 세 번의 계절을 함께하는 동안 서서히 일상이 되어간다. 민아와 준호는 피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내가 아닌 ‘너의 세계’를 바라보게 되고, 감추고 싶지만 보여주지 않고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는 누추한 현실과 마주치게 된다. 민아는 엄마와 사이가 나빴던 할머니가 결국은 자식들에게 버려져 지방 요양병원에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오랜 고민 끝에 그녀는 ‘결혼’할지도 모르는 준호에게 할머니를 보여주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준호는 민아의 고민이 너무 사소해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도 자기 부모님이 이혼한 지 오래됐고, 아버지와는 소식이 완전히 끊어졌다는 사실을 민아에게 고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며 준호라는 존재를 포함시켜 생각하기 시작한 민아는 준호에게 할머니와 함께 문병을 가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준호는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런 그의 무심함에 민아는 상처를 받는다. “준호의 관심이 그저 ‘박민아’의 내부에 머물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건 바꿔 말하면 박민아의 바깥, 박민아라는 섬을 둘러싼 주변에는 별 관심 없다는 의미였다.” (「시외버스 터미널」 134쪽) 물론 준호 역시 그녀가 원하는 것이 뭔지 대충 짐작은 갔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선 그것을 굳이 캐물어 확인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자신의 초라한 모습도 고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둘 사이에 ‘가족’이라는 요소가 개입되는 순간, 이 관계에는 그림자가 드리운다. “한 번뿐인 생을 무임승차하듯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 건 결코 아니었다. ‘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는 삶이 그녀가 꿈꾸는 삶이었다. 엄마처럼 평생을 종종거리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를 실망시키리라는 거의 확실한 예감을 감수하고서, 그녀가 택한 사람이 이준호였다. 그런데 그 남자는 그걸 모르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사소한 그림자」 157쪽)
느슨해진 관계에 치명적 일격을 가하는 사건은 뜻밖의 순간에 일어난다. 어느 날 민아는 준호의 친구인 도영과 그의 약혼녀와 함께한 자리에서 준호가 그동안 말하지 않은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알게 된다. 민아는 자신에게 일부러 숨겼다며 배신감에 휩싸여 자리를 뜨고 준호는 그런 그녀를 붙잡지 않는다. 이 장면은 둘이 이제껏 서로에게 보여주었던 관용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구축된 태도였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둘은 아직 자신의 전부를 보여줄 준비도, 상대의 모든 것을 볼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으며, 이 관계를 통해 자신이 기대하는 것을 상대가 채워주지 않으리라는 확실한 심증을 갖게 된다.

6. 완벽한 이별이란
처음 만나서 함께한 일이 ‘기다리기’였던 민아와 준호는 이별의 방식 역시 ‘기다리기’를 선택한다. 그들은 더 이상 관계를 규정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며, 이별을 암시하는 어떤 말도 먼저 꺼내지 않는다. 준호가 지방으로 파견근무를 가게 되며 자연스럽게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고,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겨준 1,500만원으로 민아는 ‘충동적인’ 영국 어학연수를 결정한다. 이후 열 달 동안 전화로 또 메일로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지만 두 사람이 돌이킬 수 없는 관계임은 자명하다.
“그들이 무언으로 동의한 부분은, 더 오래 같이 있으면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 눈물은 오래지 않아 마를 것이고 그들은 머지않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것이다. 다시 사소하게 꿈꾸고 사소하게 절망하고 사소하게 후회하기를 반복하다보면 청춘은 저물어갔다. 세상은 그것을 보편적인 연애라고 불렀다.” (「완벽한 착륙」 204쪽)
서울로 돌아온 민아와 준호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만난다. 그리고 그 순간에조차 이들은 아무런 일도 없는 듯이 태연한 척 돌아선다. 이러한 이별 방식이 가장 완벽한 이별이라고 믿으면서. “아무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사랑을 지속하는 데에 실패했으나 어쨌거나 이별을 위한 연착륙에는 실패하지 않았음을 알아야 했다. 비행기 동체도 부서지지 않았고 크게 다친 사람도 없다고, 그렇게 믿어야 했다. 그렇다면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했대도 충분히 의미 있는 비행이었다는 것도. 한때 뜨거웠던 열정이 느린 속도로 사그라져가는 것을 함께 지켜보았다는 측면에서 그들은 고장난 조종간을 끝까지 지킨 기장과 부기장처럼 서로에게 동지애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완벽한 착륙」208쪽)

작가가 포착해내는 감정의 결들은 너무나 섬세하고 미묘해서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을 문장으로 읽어내려가는 사이 모호했던 감정들은 뚜렷하고 구체적인 실체로 윤곽을 드러낸다. 정이현의 『사랑의 기초_연인들』은 소위 ‘연애소설’이라 일컬어지는 어떤 로맨스서사와도 겹쳐지지 않는다. 여기엔 뜨거운 사랑의 열기도 절망적 위기도 치명적 파국도 없다. 그들의 이야기는 심지어 해피엔딩조차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갖는 울림은 길고 깊다. 그것이 보다 현실에 가깝기 때문이고, 누구나 이러한 연애를 한번쯤 해봤기 때문이며,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진짜 연애가 바로 이런 모습이기 때문이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첫 독자의 말 … 4
작가의 말 … 6

돌연한 시작 … 12

이름의 기원 … 26
두 아이 … 40
최초의 타이타닉 … 54
당신과는 다른 이야기 … 72
기다리다 … 92
기적의 비용 … 104
자발적 오독 … 112
여름의 흐름 … 124
시외버스 터미널 … 132
단 하나의 방 … 140
사소한 그림자 … 150
첫번째 눈송이 … 164
그날의 사랑은 … 170
나란히 놓였던 발 … 176
세계의 끝, … 184

완벽한 착륙 … 200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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