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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제국, 젠더 그리고 미학
조이스, 제국, 젠더 그리고 미학
저자 : 민태운
출판사 : 전남대학교출판부
출판년 : 2014
ISBN : 9788968491511

책소개

[조이스, 제국, 젠더 그리고 미학]은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작품에서 제국, 젠더, 미학의 문제가 어떻게 밀접하게 연관되어 나타나는지 살펴보기 위해, 그의 주요 작품인 『더블린 사람들』(Dubliners), 『젊은 예술가의 초상』(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율리시스』(Ulysses)를 분석한 연구서이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작품에서 제국, 젠더, 미학의 문제가 어떻게 밀접하게 연관되어 나타나는지 살펴보기 위해, 그의 주요 작품인 『더블린 사람들』(Dubliners), 『젊은 예술가의 초상』(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율리시스』(Ulysses)를 분석한 연구서이다.
제국은 식민지를 여성으로 간주하고 식민지의 남성들을 여성화한다. 이처럼 제국과 젠더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제국은 가톨릭교와 더불어 아일랜드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이다. 한편 제국에 저항하는 민족주의 운동, 가톨릭교회는 예술의 자유를 추구하는 예술가에게 어떻게 억압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는 미학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결국 이 책에서 다루는 이러한 주제들이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있다고 할 수 있다.
주요내용은 1. 탈식민적 남성학적 관점에서 『더블린 사람들』 읽기, 2. 가면으로서의 남성성(『율리시스』에서 블룸의 경우), 3. 부활절 봉기와 조이스(「키클롭스」장을 중심으로), 4. 「태양신의 황소」에서 제국의 위대한 전통 허물기, 5. 조이스에게 있어서 민족/민족어와 영어, 6. 조이스의 파넬주의와 사회주의(「파넬 추모일의 선거사무실」을 중심으로), 7. 「경주가 끝난 뒤」에서의 피식민지인의 가면의 삶, 8. 『더블린 사람들』에서 보이는 일상 속의 전쟁, 9. 『더블린 사람들』에서의 함정과 폐소공포증, 10.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와일드의 미학 찾기 등이다.

머리말

조이스는 “나는 항상 더블린에 대해서 쓴다. 왜냐하면 내가 더블린의 중심에 이를 수 있다면 세계 모든 도시의 중심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것 속에 보편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다”라고 했다(Ellmann, James Joyce 505). 그는 편협한 민족주의에 반대했던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항상 그의 고향 더블린과 조국 아일랜드에 대해서만 작품을 쓴, 어떤 의미에서는 민족주의자로도 불릴 수 있는 작가였다. 그는 지역적인 것을 통해서 보편적인 것을 제시했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는 말이 있듯이 아일랜드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준 작가였다. 그는 또한 어떻게 보면 개인적인 것을 세계적인 것까지 끌어올린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그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었고 『율리시스』Ulysses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6월 16일은 그가 아내인 노라와 첫 데이트한 날이었다. 그 날은 이제 블룸스 데이Blooms Day라는 보통명사에 근접한 명칭까지 획득하여 국적을 불문하고 세계 곳곳에서 기념하는 날이 되었다. 필자가 조이스에 이끌리게 된 이유 중의 하나도 특정한 지리와 역사의 이면에 존재하는 이 보편성 때문이었다. 조이스는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독자로 하여금 경제적이지만 절묘한 언어 구사를 통해 작중인물들과 동시대인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재주를 보여준 작가였다.
이 보편성 때문에 모든 나라와 도시의 시민들이 조이스가 그린 더블린에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와 한국 사이에는 유난히 닮은 점이 많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한국을 아시아의 아일랜드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이다. 예컨대, 둘 다 강국에 둘러싸인 약소국의 설움을 톡톡히 맛 본 나라로, 이웃에 위치한 같은 색 피부의 제국으로부터 정치적 억압을 받았다. 아일랜드는 대영제국의, 한국은 일본제국의 식민지였다. 동일한 피부색이지만 열등한 민족으로 멸시받았고 지배자의 언어를 강요받았다. 야심찬 이웃에 맞서 독립운동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각각 친일파, 친영파가 있어 동포를 밀고하기도 하였다. 아일랜드의 민족주의 단체 무적대 대원이 피닉스 공원Phoenix Park에서 영국의 고위관리를 살해하였듯이 한국의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 역에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겨냥해 총알을 발사하였다. 또한 두 나라는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빠르게 근대화를 이루었고 IT 산업이 발전한 나라라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우리에게 보릿고개가 있었다면 그들에게도 배고픈 시절이 있었고 그것은 1840년대의 대기근에서 극에 달했다. 술과 노래를 즐기고, 손님접대하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라는 특성도 비슷하다. 더욱이, 성격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현재 두 나라의 영토가 둘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도 다르지 않다. 한국이 둘로 분단되어 있듯이, 유럽의 이 나라도 더블린이 수도인 아일랜드와 벨파스트가 수도인 북아일랜드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군인이 시민군을 진압했다는 점에서 1916년에 영국에 저항하여 일어났던 더블린의 부활절 봉기와 군부에 맞섰던 한국의 광주 민주화 운동도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조이스가 『율리시스』에서 스티븐의 입을 빌어 아일랜드 역사는 악몽이라고 했는데, 따지고 보면 한반도의 자그마한 나라 한국도 그에 못지않은 고통의 세월을 겪어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우리에게는 ‘한’이라는 것이 맺혀있다고 한다. 혹시 우리처럼 질곡이 많은 삶을 살아온 아일랜드인들에게도 그런 비슷한 것이 없을까? 가능한 해답의 실마리는 「죽은 사람들」에서 그레타Gretta가 층계에서 들려오는 노래 소리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 얼어붙듯이 서 있는 장면에서 발견된다. 그 노래 “오그림의 처녀”의 무엇이 그녀의 심금을 울린 것일까? 우선 목숨을 걸고 그녀를 사랑한 첫 사랑이 그녀에게 들려주던 노래이었으므로 그녀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 노래가사에는 아일랜드의 한이 서린 아픈 역사가 들어있다. 오그림은 그레타의 고향 골웨이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로 아일랜드의 정복자 영국 왕 윌리암 3세가 대승을 거둔 곳이다. 7,000명의 사상자를 낸 아일랜드는 대패했고 따라서 견딜만한 불행을 두고 “오그림의 패배/손실loss은 아니다”고 하는 표현이 있을 정도이다. 이 노래의 가사에서 귀족인 그레고리경Lord Gregory은 시골처녀를 유혹해서 임신시켰고, 비가 몰아치는 추운 날 그 여자가 그렇게 해서 생긴 아기를 안고 성을 찾아왔는데 귀족은 성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여자는 차갑게 죽어가는 아기를 안고 빗속에 서서 들여보내달라는 애원을 하고 있다. 귀족과 시골처녀의 관계는 영국과 아일랜드, 개신교와 가톨릭,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와 유사하다. 특히 레이디 그레고리Lady Gregory의 남편이자 당시 더블린 지역구 보수당 국회의원이었던 영국계 그레고리 경William Gregory은 거의 백만 명이 아사하고 백만 여명이 타국으로 이주해야 했던 대기근 때에 1/4 에이커 이상의 토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구제를 받지 못하게 하는 법조항을 만들어서 아일랜드에서 소농작인들이 사라지게 한 장본인이다. 그래서 그레고리의 법조항은 학살되고 국외로 추방된 아일랜드 농민들의 모든 후손들이 영원히 잊지 못할 조항이 되었다. 그레타가 몰두해 있었던 이 노래에는 이처럼 고통스러운, 잊지 못할 아일랜드의 아픈 역사, 아일랜드의 한이 숨어있었다.
한국의 많은 문학작품에도 이러한 한이 서려있는 역사와 정치가 들어가 있듯이, 미학적인 것을 중시하는 모더니즘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조이스의 소설에도 아일랜드의 정치사회적 현상이 켜켜이 싸여있다. 한 때 언어와 문체에만 집중한다고 비난받기까지 한 적이 있던 조이스에게 정치적인 역사는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책 제목이 좀 길게 되었다고 한다면 구차한 변명일까? 언뜻 제국, 젠더, 미학이라는 주제들이 서로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이스와 관련하여 따지고 보면 사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제국은 식민지를 여성으로 간주하고 식민지의 남성들을 여성화한다. 한편 정체성의 불안을 경험하는 식민지 남성들은 자신들의 남성성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더블린 남성들의 경우 술집에 가서 남성성을 회복하려고 하거나 가정에서 아내와 자식들 앞에서 남성성을 과시하려고 한다. 이처럼 제국과 젠더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제국주의는 가톨릭교와 더불어 아일랜드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이다. 한편, 제국에 저항하는 민족주의 운동과 가톨릭교회가 예술의 자유를 추구하는 예술가에게 어떻게 억압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는 미학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결국 이 책에서 다루는 이러한 주제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조이스의 의도대로 그가 교묘하게 숨겨놓은 보물찾기 놀이를 하느라 나름대로 바쁘게 뛰어다니다 보니 더러는 이미 가 보았던 곳을 되풀이해서 가기도 했음을 발견하였다. 전에 뒤집어 보았던 돌을 또 뒤집기도 하고 손을 넣어보았던 구멍에 또 넣기도 하였다. 놀이에 몰두하느라 그랬다고 변명할 수 있겠지만 혹시 반복이라는 “마비” 증상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스카 와일드의 표현대로, 삶(나의 삶)이 예술(조이스의 작품)을 모방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조이스가 문학적으로 예시하고 있듯이 어차피 인생이란 반복의 연속인가?
주로 논문들을 모아놓은 책으로는 두 번째에 해당한다. 첫 번째 책에서 보여주었던 라캉, 푸코 등 포스트구조주의자들에 대한 관심이 이번엔 정치, 민족주의, 젠더 쪽으로 선회하였다. 앞으로 필자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를지는 항상 물음표처럼 생긴 지팡이를 든 조이스가 필자를 어디로 끌어당기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더블린 사람들』의 주인공들이 학교, 가정, 도시 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듯이, 필자도 조이스의 물음표로부터 도망갈 수 없나 보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조이스의 세계는 “막다른 골목”이 아니고 무한히 열려있는 공간이기에, “기꺼이 억압받는 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책속으로 추가

벨이 사납게 울렸고, 파커양이 인터콤으로 갔을 때 격노한 목소리가 째는 듯한 북아일랜드의 억양으로 외쳤다.
“패링턴을 올려 보내!”
파커양이 타자기 앞으로 돌아가서 앉으며 책상 앞에서 필경을 하고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알레인씨가 위로 올라오래요.”
그 남자는 “빌어먹을”이라고 조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의자를 뒤로 밀고 일어섰다. 일어서니 그는 키가 크고 등치가 매우 큰 사람이었다. 그는 진한 포도주색의 늘어진 얼굴을 하고 있었고 금발의 눈썹과 콧수염을 지니고 있었다. 약간 퉁방울인 그의 눈 흰자위는 지저분했다. 그는 카운터를 들어 올리고 손님들 곁을 지나 무거운 걸음으로 사무실에서 나갔다. (D 86)

한 쪽은 “격노한” 목소리로 명령하는 지위에 있고 다른 한쪽은 “조그마한” 목소리로 불평하면서도 복종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들의 상하관계는 위아래에서 각자 일하고 있는 장소만큼이나 분명해 보인다. 알레인의 목소리를 묘사하는 “piercing”이라는 단어는 “꿰찌르다”라는 의미로 침략적인 제국주의의 확장, 근대화의 침범, 혹은 남성의 공격성 등을 넌지시 알려준다. 그는 이질적인 외부세력으로서 더블린을 지배하고 있다. 그는 “말끔하게 면도한 얼굴에 금테 안경을 두른 자그마한 사람”으로 효율적인 시간사용을 강조하는 근대화 혹은 자본주의의 화신처럼 보인다. 이를 단적으로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가 패링턴의 안전에서 주먹을 휘두를 때 그는 마치 “전자 기계”electric machine(D 91)인 것처럼 보인다.
반면에 패링턴은 “키가 크고 등치가 매우 큰 사람”으로 말끔하지 않은 시골사람의 인상을 주며 “무거운 걸음”으로 걷는다. “약간 진한 포도주색의 늘어진 얼굴”이라든지 지저분한 흰자위는 근대화되지 않은, 진보가 뒤쳐진 인종을 암시한다. 진한 얼굴색은 음주의 영향으로 볼 수도 있지만 열등한 유색인종을 가리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당시에 영국인들은 반복적으로 아일랜드인들을 인종적으로 낮은 서열에 자리매김 되었던 흑인과 동일하게 취급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Cheng 26). 영국인들에 의하면, 패디Paddy, 즉 정형화된 아일랜드 남자는 “어린애 같고, 감정적으로 불안하고, 무지하고, 게으르고, 미신적이고, 원시적이거나 개화가 덜되었고semi-civilized, 지저분하고, 복수심이 있고, 난폭한” 반면, 앵글로 색슨 족은 “아일랜드인들로 하여금 자치를 감당하지 못하게 하는 성질과 정확하게 정반대되는 성질”들을 소유하고 있었다(Curtis 53). 물론 이러한 정형화는 제국주의자의 인종차별적 시선에서 나온 것이지만 패링턴은 이 전형적인 아일랜드 남자의 특징들을 많이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우선, 제 시간 안에 맡겨진 일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근무 중에도 술집을 찾는 그는 게으르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또한 그는 근무 중 실수를 하자 “밖으로 뛰쳐나가 폭력을 휘두르고 싶은”(D 90) 욕망을 품을 정도로 난폭한 모습을 보인다. 더욱이 그는 하루 동안 경험한 분노와 좌절로 인해 “복수심”을 품으며 마침내 어린 아들에게 그것을 발산하게 된다. 그가 무지하다는 것은 구경꾼들이 그가 영국인 웨더스Weathers와 겨루는 팔씨름을 “민족적 명예”(D 95)를 건 경기로 보는 반면 그는 이러한 역사적 의식을 결여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Potts 70).
그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큰 신체이고 힘이기 때문에 알레인을 “난쟁이”(D 91)로 멸시하고 웨더스를 “애송이” (D 97)로 평가 절하할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패링턴이 정치경제적 억압구조 하에서 여성화의 과정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그의 남성성을 부각시켜줄 수 있는 육체적 힘과 신체적인 우람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장대한 신체는 『율리시스』의 「키클롭스」Cyclops 장에 나오는 시민the citizen을 상기시킨다. 시민은 신화 속의 영웅들의 특징을 합성해 놓은, 순수한 아일랜드 혈통의 남성성을 이상화한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은 “넓은 어깨의, 두툼한 가슴의, 강한 팔다리의, 솔직한 시선의, 붉은 머리털의, 주근깨가 많은, 텁수룩한 수염의, 큰 입의, 큰 코의, 긴 두상의, 깊은 목소리의. . . 영웅”(U12.152-56)이다. 물론 이는 문예부흥 당시 문화민족주의자들이 아일랜드의 전통적인 영웅들을 이상화한 것에 대한 작가의 풍자의 일환으로, 이상적인 아일랜드 남자의 허구성을 노정하기 위한 것이다. 어쨌든 패링턴의 체격은 최소한 기골이 장대한 이상적인 아일랜드의 남성의 기준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듯이 보인다. 다만 그에게는 시민에게 있는 국수주의적인 민족관 같은 것이 결여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시민이 등장하는 무대가 전적으로 바니 커넌 주점Barney Kiernan’s인데 반해 패링턴의 경우 사무실에서 주점, 그리고 가정으로 이동한다는 점이 다르다. 시민은 게일 운동 경기 협회Gaelic Athletic Association를 세운 민족주의 운동가 마이클 쿠색Michael Cusack을 모델로 해서 창조된 인물이므로 드러내놓고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반영의 기치를 든 국수주의적 인물이라면, 패링턴은 피식민지인으로서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 좀 더 평범한 더블린의 남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패링턴은 여러 면에서 식민지 아일랜드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는 남성이다. 그런 그가 제국주의적 패권을 대표하는 알레인(Cheng 120)의 사무실 공간에서 회사의 규율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이름 없는 부속품으로 전락하였다. 그는 사무실에 머무르는 내내 개체로서의 존재를 나타내는 이름을 부여받지 못하고 익명의 “그 남자”the man로 남아 있다. 그의 굼뜬 움직임과 기죽은 목소리 등은 그가 ‘거세’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알레인과 함께 있던, 유대인의 외모를 지닌 중년의 여인, 델라코어 양Miss Delacour이 일시적으로 그의 억눌러진 남성성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알레인씨가 그녀 앞에서 없어진 편지 2개와 관련하여 패링턴에게 심한 욕을 퍼붓자 패링턴은 알레인에게 잠시 대들 듯 대꾸한다. 하지만 그는 사과하지 않을 경우 해고당할 거라는 협박을 받는다. 이러한 위협은 피지배자를 향한 지배자의 강력한 ‘거세’의 수단,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여성화의 방책에 다름 아니다. 이와 같은 억압 구조에서 그가 자신의 남성성을 일시적이나마 확인할 수 있는 길은 근력을 보여주는 것뿐인데 웨더스와의 팔씨름에서 두 번이나 패배함으로써 이것은 수포로 돌아간다. 웨더스는 영국식 이름을 지닌 영국인이라는 점에서 패링턴이 그에게 졌다는 것은 아일랜드가 힘의 대결에서 영국을 이길 수 없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름의 어원이 “거세된 숫양”으로 거세된 남자를 가리킨다는 점(Jackson 82)에서 그가 거세된 남자도 당하지 못하는 여성화된 남자임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인에 대한 패배는 「경주가 끝난 뒤」After the Race의 지미Jimmy Doyle가 카드 게임에서 영국인 라우쓰Routh에게 진 것을 상기시킨다. 한편, 패링턴을 분노하게 하는 또 다른 사람은 “런던 억양”을 쓰는 영국 여인으로 그는 그녀와 자신 사이에 낭만적인 이성애적 관계를 꿈꾸지만 그녀는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떠나버린다. 나갈 때 그의 의자에 가볍게 부딪치자 “실례합니다!”(D 95)라는 의례적인 말을 던질 뿐이다. 그것은 「애러비」Araby의 주인공 소년이 낭만적 생각을 품고 애러비에 갔지만 영국식 억양을 쓰는 여자 상인의 의례적인 말을 들었을 때 느꼈을 절망적인 현실과 비슷할 것이다. 소년이 짝사랑하는 연상의 여인과의 관계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과 마찬가지로 패링턴은 자신이 그 여인의 관심을 끌만한 ‘남성’이 아님을 절망적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애러비라는 바자가 영국 상인들의 지배를 받는 것, 패링턴이 영국계 사장의 지배하에 있는 것 모두 아일랜드가 경제적으로 영국에 종속되어 있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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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책 머리에 / 5
1. 탈식민적 남성학적 관점에서 『더블린 사람들』 읽기 / 13
2. 가면으로서의 남성성 ― 『율리시스』에서 블룸의 경우 / 41
3. 부활절 봉기와 조이스 ― 「키클롭스」장을 중심으로 / 65
4. 「태양신의 황소」에서 제국의 위대한 전통 허물기 / 87
5. 조이스에게 있어서 민족/민족어와 영어 / 111
6. 조이스의 파넬주의와 사회주의:
「파넬 추모일의 선거사무실」을 중심으로 / 137
7. 「경주가 끝난 뒤」에서의 피식민지인의 가면의 삶 / 165
8. 『더블린 사람들』에서 보이는 일상 속의 전쟁 / 187
9. 『더블린 사람들』에서의 함정과 폐소공포증 / 211
10.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와일드의 미학 찾기 / 233
참고문헌 / 258
작품색인 / 276
약어 /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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