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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 신화에서 역사로
무령왕, 신화에서 역사로
저자 : 정재윤
출판사 : 푸른역사
출판년 : 2021
ISBN : 9791156122036

책소개

왕릉 발굴 50주년을 맞은 무령왕 톺아보기
‘섬소년’은 어떻게 중흥의 왕이 되었을까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백제는 ‘잊힌 왕국’이다. 실제 백제하면 삼천 궁녀, 낙화암, 의자왕, 계백을 떠올린다는 답이 70퍼센트에 가깝다는 조사도 있다. 기껏해야 근초고왕, 성왕, 아직기와 왕인을 더할 따름이다. 만주 등에서 한민족의 기개를 떨친 고구려, 한국사의 뼈대를 이룬 신라와 더불어 한반도의 패권을 다툰 백제에 어울리는 대접은 아니다. 고대 일본에선 ‘구다라 나이(백제 것이 아니다)’ 물건은 별 볼 일 없다는 인식이 퍼졌을 정도라는데 말이다.
백제사를 30년 넘게 천착해온 지은이는 이제 탄생 1560주년, 왕릉 발굴 50주년을 맞은 무령왕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백제 제대로 보기’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성근 사료를 날줄로, 합리적 추론을 씨줄로 하여 의문에 싸인 혈통, 이국에서 태어난 섬 소년이 왕위에 오른 역정, 그리하여 “다시 강국이 되었음”을 선포하는 데 이른 치적을 짚어낸 이야기는 여느 역사소설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의문에 싸인 혈통과 탄생
백제 제21대 왕 개로왕의 동생 곤지는 461년 왜로 향한다. 이때 임신한 개로왕의 부인이 동행한다. 일본으로 가는 여정 중 각라도에서 태어나 시마(섬)란 이름이 붙은 소년이 훗날 25대 무령왕이 된다. 곤지가 일본에 간 이유, 시마의 혈연적 부친이 개로왕인지 곤지인지, 시마는 왜 곤지와 떨어져 따로 성장했는지 등을 꼼꼼하게 파고든다. 시마는 규슈 일대에 자리 잡은 유력한 백제계 도왜인 집안 출신의 어머니를 둔 곤지의 서자(135쪽)라는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일본 아스카 지역에서 꽃피운 백제 문화의 유적을 짚는 것은 덤이다.

덕으로 닦은 권력 기반
귀족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정치적 라이벌인 형 곤지를 다시 부른 문주왕의 조치에 따라, 혹은 훗날 동성왕이 된 동생의 귀국에 따라 규슈에서 활동하던 시마 역시 백제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문주왕이 해구에 의해 시해된 후 동생 동성왕의 즉위에 일정 부분 기여한다. 이어 왕권 강화를 추구하며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을 외면한 동성왕의 견제를 받았으나 전라도 지역에 파견되어 민심을 얻는다. 《삼국사기》에서 “인자하고 너그러워 백성들의 마음이 그를 따랐다”고 평한 대목에 근거한 유추이다(202쪽). 그 결과 민심을 잃은 동성왕이 중신 백가에게 살해당하자 ‘나라사람들(國人)’의 추대로 왕위에 오른다(228쪽). 나이 마흔 때 일이다.

갱위강국更爲强國을 선언한 명군名君
왕권을 쥔 무령왕의 위민정책이 돋보인다. 재위 6년(506) 춘궁기에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휼(252쪽)하고, 재위 9년(509)에 임나 지역 유민의 호적을 복구하는가 하면(255쪽), 재위 10년(510) 봄에 국가 주도로 제방을 완비하고 놀고먹는 자들을 몰아 농사를 짓게 했다(252쪽). 이것이 부국富國을 겨냥한 것이라면 집권하자마자 달솔 우영을 보내 고구려 수곡성을 공격하고(230쪽), 재위 12년(512) 임나 4현을 수복하는 등 섬진강 유역을 확보해 일본과 중국을 향하는 물길을 확보(269쪽)한 것은 강병强兵을 지향한 것이라 하겠다. 그 결과 521년 ‘갱위강국更爲强國(다시 강국이 되다)’을 선포하고 동쪽을 편안하게 했다는 ‘영동대장군’의 작을 받으니 이는 당시 고구려 안장왕보다 높은 품계로(292쪽) 백제의 국제적 위상을 드높인 외교적 개가였다.

성근 사실史實을 보완한 합리적 추론
지은이는 한ㆍ중ㆍ일의 사료를 섭렵하고 고고학적 연구를 토대로 무령왕 일대기를 구성했지만 사실史實 자체는 성글다. 망국의 역사를 누가 성실하게 기록했을 것인가. 지은이는 이를 합리적 추론으로 메우는 데 성공한 것으로 읽힌다. 그렇게 해서 무령왕의 이야기를 신화에서 역사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하는 한편, 무령왕릉 발굴품을 살펴 ‘검이불루 화이불치(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를 지향한 백제 문화에 미래지향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책을 펴내며
프롤로그-5~6세기 한반도의 전운

I부 백제사의 역주행, 무령왕릉 발굴
1. 1,500여 년 만에 드러난 무령왕릉
운명의 그날, 삽자루에 걸린 벽돌|무령왕릉 발굴, 우연인가 필연인가|무령왕릉 발굴 이후
2. 백제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다
정교하고 화려한 금속공예품|무령왕릉 발굴의 성과

II부 탄생과 설화
3. 위기의 백제를 구하라-왜로 간 곤지
개로왕 즉위의 일등 공신 곤지, 좌현왕에 임명되다|곤지가 왜로 간 까닭
4. ‘섬’을 이름으로 가진 아이
무령왕 탄생 설화는 어디까지 사실일까|무령왕이 태어난 가카라시마의 위치|무령왕의 이름은 왜 사마였을까
5. 곤지, ‘가와치 신화’를 창조하다
백제인들이 정착한 가와치 지역과 아스카|가와치 지역에 보이는 백제인들의 흔적|백제와 왜, 전략적 동반 관계 구축-곤지 파견의 목적
6. 홀로된 사마, 섬을 무대로 성장하다
사마는 누구의 아들일까-출생의 비밀|섬을 무대로 활동한 ‘도군’, 사마|이와이의 난을 통해 본 규슈 지역 백제계 세력의 실체|사마, 백제 중흥의 뜻을 세우다
7. 천험의 요새 웅진으로
개로왕, 무모한 패장인가 시대의 희생양인가|500년 도읍지 한성이 불타다|웅진, 위기에 빠진 백제의 새로운 터전이 되다

III부 국인공모國人共謀
8. 곤지의 귀국과 죽음, 혼돈의 시대로
곤지는 어떻게 귀국하였나|곤지의 죽음-자연사인가 음모인가|혼돈의 극치, 문주왕 시해
9. 모대와 사마의 입국
삼근왕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모대의 입국|사마의 입국|동성왕 즉위 배경|동성왕의 정치적 기반|동성왕 즉위와 사마의 역할
10. 사마의 국내 활동
동성왕의 왕권 강화 노력과 한계|사마, 위기를 반등의 기회로
11. 동성왕 몰락과 사마의 결단
파국으로 치달은 권력 투쟁|동성왕의 몰락|동성왕 몰락의 전조|사마는 어떻게 살아남아 왕이 되었는가
12. 동성왕 시해와 정변 주도 세력
동성왕 시해 사건의 전모|동성왕 시해와 무령왕의 역할|강에 수장된 역적

IV부 갱위강국更爲强國
13. 준비된 개혁군주
제도적인 왕권 강화로|무령왕 가계의 골족의식|귀족들의 서열화
14. 위민정치의 실천
무령왕의 위민의식|국가 주도의 제방 축조|백성들의 귀환과 호적 정비|백성의 나라임을 선언하다
15. 강을 열고, 바닷길을 잇다
흔들리는 백제의 위상|백제의 기지개, 가야와의 알력|남방 정책, 섬진강 유역을 장악하다|동아시아 교역로를 주관하다
16. 갱위강국의 선포
무령왕 정권의 지향점|숙원인 고구려를 격파하다|《양직공도》에 보이는 백제의 위상|갱위강국을 만방에 선포하다
17. 사마, 잠들다
한성 순무, 시작과 끝|마지막 고뇌, 신라와 가야|웅진 땅에 잠들다

에필로그-무령왕, 끝나지 않은 신화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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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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