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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와 쇠고기 (성균관과 반촌의 조선사)
노비와 쇠고기 (성균관과 반촌의 조선사)
저자 : 강명관
출판사 : 푸른역사
출판년 : 2023
ISBN : 9791156122449

책소개

500년 조선왕조와 성균관의 버팀목은
쇠고기 팔던 노비들의 피와 땀이었다

넓고 깊고 촘촘한 강명관 표 ‘역사 그물’
역사를 읽는 방법은 다양하다. 왕조를 중심으로 시대를 구분하기도 하고, 인물이나 사건의 추이를 따라 파악하기도 하는 식이다. 이 중 키워드를 중심으로 역사를 읽어내는 방법은 꽤나 유용하다.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세밀화’를 그려낼 수 있어서다. 이 책의 지은이 강명관 전 부산대학교 교수는 이미 풍속화, 열녀 등을 중심으로 주목할 만한 성과를 쌓았고, 그리하여 고정 독자층을 확보한 이 방면의 대가다.
그가 이번엔 ‘노비’와 ‘쇠고기’란 낯선 조합으로 조선사를 파고들었다. 어쩌면 사회사, 혹은 음식문화사로 읽힐 법하지만 두툼한 책 두께가 시사하듯 조선의 정치사회사를 관통하는 역작이다. 조선이란 사족국가의 국가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던 최고의 교육기관 성균관이 공노비 신분이었던 반인의 노동에 바탕했으며 그들이 도축해 팔던 쇠고기에 대한 ‘세금’이 버팀목이었음을 치밀하게 그리고 흥미롭게 증명해내기 때문이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눈이 번쩍 뜨일 뜻밖의 사실
조선은 내내 소의 도축을 금하고, 쇠고기를 먹은 사람까지 처벌했다. 원칙적으로 그랬다. 하지만 17세기에 서울에는 속전을 물고 쇠고기를 파는 ‘현방’이 공공연히 존재했다. 책은 현방을 운영하던 반인泮人과 이들이 살던 반촌 이야기를 촘촘히 풀어간다. 성균관 주변의 ‘반촌’에 살던 그들이 고려 시대 성리학을 처음 전한 안향이 기증한 노비에 뿌리를 두었다든가, ‘제업문회’란 일종의 학교를 자체적으로 운영하기도 했다는 등 여느 역사책에서는 만나기 힘든 사실을 소개한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반인들이 자비로 무장을 갖추고 참전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 반인들은 1년에 여섯 달을 입역하고, 7~8세부터 입역하는가 하면 성균관 유생들에게 회초리를 맞아가며 봉사했다는 수탈상도 그려진다. 노예들이 기록을 남겼을 리 없으니 다양한 사료를 꼼꼼히 뒤져낸 공력이 감탄스럽다. 그런가 하면 한반도 음식문화 중심에 쇠고기가 있었으니 불교국가인 고려에서도 개성 시전에서 고기를 팔았다든가, 18세기 조선에선 해마다 약 20만 마리의 소가 도축되는 ‘쇠고기 국가’였다는 사실 등도 만날 수 있다.

무릎을 칠 만한 흥미로운 이야기
반인들이 수탈의 대상에만 그친 것은 아니었단다. 성균관과 일종의 경제공동체가 되어 삼법사의 수탈에 반발하기도 했고, 유생들이나 과거를 치러온 이들이 묵는 여각의 주인은 ‘반주인’이라 하여 과거 합격 잔치를 반주인 집에서 치르는 등 내내 이익을 공유했다. 과도한 ‘세금’을 피해 생계를 도모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도 등장한다. 반인들이 얼음 판매업을 독점하려 ‘빙계’를 만든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조선 후기에 육류·어류의 소비가 늘어나면서, 여름철에 육류·어류의 부패를 막기 위해 국가는 물론이고 의열궁義烈宮이나 성균관에서도 얼음이 부족하면 사빙을 사서 썼다. 반인은 1768년 빙계氷契를 조직하여 사빙私氷을 독점하고자 했다. 빙계가 창설되기 전에 경강변에는 사빙업자가 30~40곳 있었기에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1789년 궁방의 마직들의 횡포에 맞서 사흘 동안 현방 문을 닫아 서울 시민들 제사상에 돼지고기를 올리도록 한 ‘철도’, 반인들이 성균관 식당에 식사 제공 노역을 거부한 ‘궐공’, 이로 인해 유생들이 성균관에서 물러나는 ‘공재’ 등 그 자체로 한 편의 소설이 될 만한 이야기들이 곳곳에 실렸다.

번득이는 예리한 비판의식
현방, 즉 조선의 공식적 쇠고기 판매는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 농사도 장사도 할 수 없는 성균관 공노비들의 생계수단을 위해 허용한 현방은 점차 형조, 사헌부, 한성부 삼법사의 먹잇감이 되었다. 이들의 실무관리인 하예에게는 따로 급여가 없었으니 이를 마련하기 위해 불법행위 단속을 빌미로 가혹한 속전을 물렸다. 차인들이 구하기 어려운 소의 특정 부위를 구입하겠다고 나선 뒤 이에 응하지 못한 현방에게 돈을 받아내는 ‘방전’이 그런 예다. 종내에는 성균관까지 ‘현방 등 치기’에 가담했으니 조선 후기 성균관은 현방에서 수탈하는 돈으로 운영되었다. 이를 두고 지은이는 “사족 체제의 정점에 있던 자들은 성균관을 존중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실제 재정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고도 근원적인 대책은 관심 밖이었다고”고 비판한다. 정조는 각 군문의 군졸들이 밤에 현방을 찾아와 돈을 요구하는 일을 막기 위해 ‘고입인가율’을 적용하도록 하는 ‘게판’을 허용했는데 이 역시 흐지부지되는 등 논의만 무성했지 효과적인 대책은 서로 미루기만 할 따름이었다.
무엇보다 “반인과 현방의 입장에서는 삼법사와 성균관으로부터 이중의 수탈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조선 사족체제의 최고 교육기관과 경찰기구가 반인과 현방의 수탈 위에 존립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갈파한 대목은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책은 역사서로는 이례적으로 각종 수치 자료까지 인용했기에 읽기 만만치 않다. 하지만 쇠고기를 중심으로 조선사를 관통하면서 곳곳에 담긴 흥미로운 이야기 덕분에 조선 정치 비판서로도, 풍속사로도 공들여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머리말

01 쇠고기
1. 삼한에서 고려까지
● 삼한과 삼국시대
● 고려
원 간섭기 이후
2. 조선 전기
● 금도령과 ‘달단 화척’
● 불법 도축과 쇠고기 소비의 증가
3. 조선 후기
● 서울의 사도
● 지방 사도
● 관포
국가가 설치한 공식 관포|국가가 묵인한 지방의 관포
● 법의 무력화

02 반인
1. 반촌
2. 반인
● 반인의 유래
● 반인의 수
● 반인의 노역
3. 반주인
4. 반인의 성격과 문화
● 반인의 언어와 폭력적 성향
● 반인의 지식과 한시 문학 및 예술

03 성균관과 삼법사
1. 성균관
● 조선 전기 성균관의 재정
● 임병양란 이후 재정의 붕괴
임병양란 이후 재정 상황|성균관의 재정 수요|성균관의 토지|성균관의 절수 어장|노비신공
2. 삼법사
● 삼법사와 속전
● 이예와 금란

04 현방
1. 반인과 도축업
● 반인의 생계수단
● 반인과 소의 도축
2. 현방
● 현방의 출현 시기
● 현방의 수와 위치
● 현방의 구성과 구성원
● 소의 도축 방법과 부산물

05 수탈
1. 속목ㆍ속전과 1707년의 감축
2. 사헌부 속전의 복구와 성균관의 현방 수탈
3. 1712년 현방의 빚과 공금 대출의 시작
4. 삼법사의 본격적 수탈의 전개
● 1724년 삼법사 속전 감면 요청의 실패와 공금의 대출
● 1728년 조지빈의 상소, 궁핍해지는 반인과 성균관
● 삼법사 속전 감축 요구와 반복된 실패
대사성 정우량ㆍ김상규ㆍ김약로ㆍ서종옥의 요청과 좌절|1740년 대사성 심성희의 해결책 제안|왕과 조정의 무능과 책임 회피
● 1750년 균역청 설치 이후의 사정
● 1812년 궐공과 대책의 실패
5. 새로운 수탈의 주체, 궁방
6. 명문화된 대책, 〈현방구폐절목〉
● 1857년 〈현방구폐절목〉
● 1862년 〈현방구폐절목〉

06 대응
1. 현방의 확장과 첩도
● 현방의 확장
● 첩도
2. 건전과 창전, 우방전
● 건전
● 창전
● 우방전
3. 어물전과 염해전 등
● 어물전
● 침어전
● 염해전
● 빙계

07 저항
1. 식당 도고
2. 게판
3. 집단행동, 철도
4. 궐공

08 해방
1. 제도의 변화
● 1895년 〈포사규칙〉
〈포사규칙〉의 내용|〈포사규칙〉과 현방|현방의 포사세|포사와 포사세의 관할권을 둘러싼 논란
● 1905년 〈도수규칙〉
● 1909년 〈도수규칙〉
2. 갑오개혁 이후 반인의 활동
● 회사 설립을 위한 시도
● 검포소
● 균흥조합소
3. 숭의학교 설립

09 끝맺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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